원년 이후 큰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던 남자부 세터 포지션에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테랑 세터들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고 있는 가운데 삼성화재의 우승을 이끈 유광우(30)의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다.
탄탄한 조직력으로 무장한 삼성화재는 올 시즌 일찌감치 정규시즌 1위 자리를 굳히며 독주한 끝에 정규시즌 4연패를 확정지었다. 이제 삼성화재는 체력의 우위라는 절대적인 이점을 안은 채 V-리그 8연패에 도전한다. 언제나 그랬듯 “약해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삼성화재는 개인보다는 팀의 힘으로 악재를 이겨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타 팀의 거센 추격을 잠재웠다.
팀을 중시하는 신치용 감독이 만든 배구 문화, 이선규 고희진 등 베테랑 선수들의 헌신,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신진급 선수들 등 우승의 이유는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해결사 레오, 그리고 그 레오에게 공을 올려주는 유광우의 명품 토스를 빼놓고 삼성화재의 정규시즌 우승을 논하기는 어렵다. 박철우가 군 복무를 위해 시즌 중반 빠진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레오를 주연으로 만든 유광우의 숨은 공로가 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항상 수준급의 토스웍을 보이고도 “좋은 외국인 선수와 함께 해서 그런 것”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던 유광우였다. 공헌도에도 불구하고 큰 빛을 보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동료들을 살리고 있는 유광우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는 이제 아무도 없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동료들의 타점을 정확하게 맞춰주는 유광우의 토스웍은 레오는 물론 다른 국내 공격수들도 고루 활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삼성화재는 박철우의 영입 당시 간판 세터였던 최태웅을 보호선수 명단에 넣지 않고 풀었다. 그리고 최태웅은 현대캐피탈로 이적했다. 진통이 예상됐지만 유광우를 후계자로 점찍은 삼성화재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타 팀에 비해 빠른 세대교체의 속도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삼성화재가 유광우 체제를 완전히 뿌리 내린 것과는 달리, 다른 팀들은 이제 새로운 세터들을 발굴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한선수(대한항공)가 다음 시즌 복귀하기는 하지만, 유광우의 시대가 좀 더 오래갈 수 있는 여건이다.
한편 유광우가 자신의 시대를 선언하는 시점, 남자부에서는 세터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최태웅 권영민이라는 베테랑 선수들이 버티는 현대캐피탈은 이승원이 주전으로 뛰는 경기가 확 늘었다. V-리그 원년부터 리그 최고의 세터로 군림했던 두 선수에게는 최대의 시련이었다. 대한항공도 신예 세터인 황승빈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세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LIG손해보험, 한국전력도 양준식 권준형 등 신예 세터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OK저축은행을 이끄는 이민규를 생각하면 이제 남자배구 세터계도 20대 중·후반의 선수들 위주로 개편되고 있는 것이다. 성장통은 있겠지만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이런 경향도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세터 출신인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은 입을 모아 “늦은 감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다. 세터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다음 시즌 각 팀의 전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이는 여전히 베테랑들이 활약하고 있는 여자부의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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