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쪼개기] ‘풍문’, 순진한 이준·고아성이 얄밉다면 비정상인가요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3.17 09: 20

분명히 옳은 말만 하는데도 뭔가 심기가 불편해진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도덕 교과서에 나올 만한 이야기를 하는 이준과 고아성이 어딘지 모르게 얄밉다면, 이미 ‘풍문으로 들었소’ 제작진이 깔아놓은 밑밥을 덥석 물은 것과 다름이 없다.
지난 16일 방송된 SBS ‘풍문으로 들었소’ 7회는 서민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여가며 서봄(고아성 분)의 가족을 무시하는 한정호(유준상 분), 최연희(유호정 분)의 행태에 한인상(이준 분)이 화를 내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인상은 부모 정호, 연희와 달리 속물 근성을 아직까진 드러나고 있지 않다. 봄이의 가족을 노골적으로 멸시하는 부모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고, 소심하지만 반항도 해보는 인물이다. 7회에도 봄이의 가족에게 전원생활을 하라고 압박하는 정호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혼쭐이 났다. 자신의 부모가 사람을 돈과 권력으로 차별하고 스스로 신분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한다. 물론 겁이 많고 힘이 미약한 온실 속 화초 같아 큰 파장을 일으키진 못한다. 다만 작은 반항도 크게 받아들이는 정호와 연희의 의외로 유약한 모습 탓에 시청자들은 웃곤 한다.

봄이는 현명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 시부모의 냉대와 무시로 속앓이를 하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연희가 미신인 부적을 자신의 방에 붙이는 것을 목격하자 “좋은 가풍은 아닌 것 같다”, “부적 없이도 잘 살겠다”라고 일침을 가해 연희의 뒷목을 잡게 했다. 인상이 애써 속물이 아니라고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면, 잡초처럼 자란 봄이는 좀 더 진취적으로 정호와 연희의 속을 긁는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정호가 어떻게 재력과 권력을 갖추게 됐는지에 대해 학습까지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정호와 연희보다 더 '갑질'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드라마는 재력 차이가 있는 두 집안이 갈등을 벌이는 과정에서 갑과 을 가리지 않고 풍자를 하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절대적인 재력, 권력, 지략으로 사람을 억누를 수 있는 정호와 연희가 유독 봄이와 인상의 말 한 마디에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통쾌하면서도 짠하다.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험한 세상에서 몸을 굴려본 적 없어 유리처럼 깨지기 쉽다. 위선이 몸에 익숙해진 탓에 천진난만하게 도덕군자처럼 맞는 말만 따박따박하는 어린 봄이와 인상의 솔직한 행동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난감해하기 때문.
그래서 때론 대한민국 정계와 재계를 뒤흔드는 정호와 연희가 너무도 미약한 이들에게 수모에 가까운 ‘돌직구’를 맞을 때 시청자들은 뭔가 속이 시원해지는 맛을 보게 된다. 동시에 살벌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닳고 닳았는데도 자꾸만 당하기 일쑤인 이들 부부를 보며 세상 물정 모르는 봄이와 인상이 얄밉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드라마가 갑에 대항하는 을의 반란을 시원하게 담는 단편적인 이야기가 아닌 까닭에 착한 것처럼 보이나 어떻게 보면 순진해서 민폐를 끼치는 봄이와 인상이가 순간 순간 비호감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재미가 달라지는 '풍문으로 들었소'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jmpyo@osen.co.kr
'풍문으로 들었소'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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