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연기’로도 명장면이 만들어지는 시대다. 과거 서툰 연기력으로 의도치 않은 웃음을 준 배우들이 있다. 충격적인(?) 연기력으로 수많은 영상과 패러디물을 양산,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이들이 주는 색다른 웃음과 즐거움 때문인지 요즘 대중은 ‘발연기’를 펼친 배우들에게 비난보다 오히려 호감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다. 로봇 같은 무감정 연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장로봇’ 가수 겸 배우 장수원이 가장 좋은 예. 최근 들어 연기력이 좋아지고 있는 그에게 “초심을 잃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장수원은 지난해 5월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연기의 신’ 특집에 출연해 자신의 ‘발연기’를 쿨하게 인정하면서 이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어설픈 연기로 웃음을 자아내는 새로운 캐릭터 시장을 개척했다. tvN 드라마 ‘미생’을 패러디한 ‘미생물’에 출연하면서 남긴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는 지난해 손에 꼽는 유행어가 되기도 한 바다.
‘장로봇’이 핫 아이콘으로 떠오르기까지. 그간 많은 배우들의 눈물겨운 희생(?)이 있었다. 어떤 배우들이 어떤 장면으로 ‘발연기’ 명장면을 만들었을까.

# ‘발호세’ 박재정 “저랑 새벽 씨, 붕가(?) 하겠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먼저 뜨겁게 달군 발연기의 주인공은 ‘발호세’ 박재정이었다. 지금은 초심을 잃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그에게도 ‘웃픈’ 과거가 있었다. 지난 2008년부터 방송된 KBS1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서 강호세 역을 맡아 ‘발연기’를 펼친 바.

당시 그의 어색한 연기를 담은 장면들을 모아서 편집한 영상이 뜨거운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강석우에게 맞고 쓰러지는 장면, 누가 봐도 티 나게 테이블에 물을 엎지르는 장면과 “저랑 새벽 씨, 붕가(분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 등이 압권이다. 원더걸스의 ‘노바디’ 댄스를 선보이는 신은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깊은 감성의 연기가 어울릴법한 마스크로 다소 오버스러운 듯한 연기를 펼쳐야하는 일일연속극의 분위기를 소화하다 보니 재미있는 상황이 대거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 ‘익룡’ 강민경 “으아! 으아아아아!”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은 가끔씩 진귀한 장면들을 연출해내곤 한다. 여성 듀오 다비치의 강민경이 그 중 대표적인 케이스. 그는 지난 2010년부터 방송된 SBS 드라마 '웃어요 엄마'에서 이미숙의 딸로 출연해 호흡을 맞췄다. 처음 하는 연기인데다가, 잔뼈가 굵은 명배우와 함께 호흡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기력이 도드라진 것이 사실.

특히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 차량의 선루프를 열고 신 나게 자유를 만끽하다 슬픔이 북받쳐 오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신인 연기자로서 복합적인 감정을 소화해내기가 쉽지 않았을 터. 강민경은 “으아아아~”라고 소리를 지르며 오열 했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익룡의 울음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이후 이 장면은 짧은 영상 클립으로 만들어져 온라인상에 퍼졌고, 강민경은 ‘익룡 민경’이라는 웃픈 닉네임을 갖게 됐다.
이 장면이 화제가 되자 강민경은 “제 인생 첫 드라마에서의 첫 장면, 첫 연기였다. 활영 시기가 겨울이어서 입이 잘 안 벌어진 것 같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 동호 “살려주세요. 제발~”

그룹 유키스로 활동했던 동호도 영화에 출연해 기억에 남을만한 명장면을 남기고 탈퇴했다. 지난 2012년 영화 ‘돈 크라이 마미’에서 주연을 맡아 배우 유선과 대립했다. 특히 영화의 막바지, 유선이 칼로 동호를 위협하는 장면에서 흐름을 깨는 코믹한 장면이 연출됐다. 생명의 위협을 당한 동호는 “살려주세요”라고 부탁하는데, 대사의 톤과 느낌이 책을 읽듯 전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아 웃음을 자아낸 것. 분명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이 장면은 재미있는 장면으로 남고 말았다.
# ‘장로봇’ 장수원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장수원을 빼놓고 ‘발연기’를 논할 수 있을까. 치부로만 생각됐던 ‘발연기’로 새 시장을 개척한 그다. 지난 2013년 방송된 KBS ‘부부클리닛 사랑과 전쟁’ 아이돌특집 3탄에 출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그는 로봇처럼 딱딱한 동작과 도저히 감정을 파악할 수 없는 연기톤으로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이후 해당 영상과 캡처 이미지 등이 온라인상에 퍼지며 ‘장수원 로봇설’까지 나돌게 됐다.

특히 ‘사랑과 전쟁’에서 유라와 만들어낸 “어디 다친데 없어요?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미안해요“라는 대사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사고가 날 뻔한 긴박한 상황에서 아주 침착하게 책 읽는 듯 한 연기를 선보인 것. 분노, 환희, 짜증, 갈마, 당황, 의심, 놀람, 평온,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을 한 가지 표정으로 표현한 것도 백미였다.
장수원의 경우는 흐름을 잘 탄 독특한 케이스일 뿐, ‘발연기’ 논란은 배우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며 희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배우로서의 생명을 이어가는데 분명한 걸림돌이고, 극복해야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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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유플러스 광고화면, MBC, KBS, SBS 방송화면 캡처, 영화 '돈크라이마미'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