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 임권택 '화장', 거장이 욕망을 다루는 법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3.18 07: 41

죽어가는 아내와 싱그러운 젊은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가 있다.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호하지만, 속내는 젊은 여인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하다. 아내와 사랑을 나누면서 싱싱한 젊음을 떠올리는 식이다. 이 비극적인 상황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감독 임권택, 제작 명필름) 속 이야기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는 '화장' 언론시사가 진행됐다. 국내에선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됐다.

영화는 안정된 회사와 가정 등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던 한 중년 남자 오상무(안성기) 대한 이야기다. 어느날 아내(김호정)는 재발된 뇌종양으로 쓰러지고, 그때부터 오상무는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아내를 돌본다. 그 가운데 매력적인 부하 직원인 추은주(김규리)에게 흔들리게 된다. 아내의 죽음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오상무의 시선은 언제나 추은주에게 머문다.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중년 남자의 욕망이다. 죽음과 젊음은 끝없이 대비되는데, 성숙한 고찰이 수반돼 깊이를 더한다. 이를 위해 영화는 시간이 아닌 인물의 심리를 따라간다. 병원과 병실, 장례식장 등 일상적인 공간이 등장하지만, 특유의 따뜻함이 아닌 적막함이 부각된다. 오상무와 추은주의 유일한 스킨십은 복잡한 엘리베이터서 손 끝이 스친 일로, 그곳만이 에로틱한 분위기를 담아낸다.
가장 인상적인 신은 남편 오상무의 도움을 받아 몸에 묻은 오물을 씻는 화장실 신이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 등 복잡한 심경에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오열한다. 원 신 원 컷으로 진행된 장면으로 카메라는 두 사람의 모습을 묵묵하게 잡아낸다. 때문에 먹먹함은 배가 된다. 임권택 감독과 김호정 모두 해당 장면을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꼽았다.
임 감독은 언론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가 사실감을 줄 수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며 "근래 시사를 하고 난 후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영화의 장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사실감'이라고 답했다. 환자가 병앓이 하는 장면이 많은데, 의사들이 보기에 간호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만큼 전반적인 조명 콘셉트 역시 인위적이지 않은 사실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스러움을 최우선으로 했다.
세 배우의 열연 역시 빛난다. 안성기는 섬세한 연기로 오상무의 미묘한 심리를 표현한다. 병수발에 지쳐 고단한 표정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쫓는 수줍은 눈빛까지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러닝타임 94분이 후딱 지나간다. 김호정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단에 몰린 여인을 처절하게 연기한다. 매혹적인 여인 추은주 역의 김규리는 "김규리가 이렇게까지 예뻤나"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답게 그려진다.
내달 9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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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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