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잠실구장에서 NC 다이노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불펜 피칭을 한 뒤 덕아웃으로 들어오던 이현승(32, 두산 베어스)은 웃음을 지었다. 이유를 물으니 “운동이 재미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이현승은 이날 불펜에서 25개 정도의 공을 던졌다. 야구가 재미있어진 것은 아프지 않아서다. 군 복귀 시즌이던 지난해 65경기에서 55이닝을 소화하며 3승 3패 15홀드, 평균자책점 5.07을 기록했던 이현승은 올해 선발로 시즌을 시작할 것이 유력하다. "안 아파서 좋다“는 이현승은 ”생각한 만큼 몸 상태도 올라와 줘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은 그를 5선발로 점찍었다. 시범경기 선수기용을 봐도 5선발은 이현승이다. 하지만 본인은 “아직 확실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그냥 먼저 기회를 받은 것뿐이다”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대신 “올해 아니면 선발 기회는 없을 것 같다. 두산에 와서 아직 보여준 것도 많지 않고, 이젠 핑계도 없다. 그냥 이현승이 아닌 특별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는 말로 색다른 다짐을 꺼내보였다.

지난 15일 수원 kt전은 그런 이현승의 절치부심한 시간들을 엿볼 수 있는 경기였다. 당시 이현승은 5이닝 동안 4피안타 4탈삼진 2실점 호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홈런을 맞으면서 실점하고 그 이후에 연속안타를 맞은 것이 아쉽다. 다음 경기에서는 맞더라도 연속으로 맞지는 않도록 준비할 것이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경기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면서도 볼넷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현승에게 이런 부분은 고무적이지 않았냐고 묻자 “볼넷이 없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제구에 중점을 뒀는데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동의했다. 불펜에서 짧은 이닝을 던질 때보다는 구속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선발투수에게는 더 정확한 제구가 요구된다.
김 감독은 이현승이 선발진에서 생존하려면 한계투구 수를 올려야 한다고 일찌감치 못을 박았다. 이현승 역시 “그건 선발을 하려면 당연한 것이다. 팀을 위해 내가 한계 투구 수보다 일찍 내려오거나 더 던져야 할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고 설명했다. 캠프에서 불펜 피칭을 최대 120개까지 소화한 이현승은 다음 등판 예정 경기인 20일 잠실 KIA전에서는 70개 정도의 피칭을 소화할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짜놓은 스케줄에 따라 조금씩 몸이 만들어지고 있다. “매년 캠프가 힘들었는데, 캠프에서 아프지 않았던 것은 두산에 오고 나서 이번이 처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단계적으로 된 것 같아서 정말 좋다”며 이현승은 연신 행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목표에 대해서는 "수치화한 것은 없다"면서도 웃으면서 "잘 할 것 같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두산의 투수조장이기도 한 이현승은 후배들에게 조언도 열심히 한다. 그는 “요즘은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려 한다. 나 또한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젊은 투수들은 조장을 잘 따르고 있다. 누가 말을 잘 듣지 않느냐고 농담 섞인 질문을 던지자 “(이)용찬이와 (홍)상삼이가 빠져서 그런지 다들 너무 착하다”면서 장난기 빠지지 않은 대답을 해왔다. 자신을 돌보며 후배들까지 아우르는 이현승의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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