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or 소방수' 윤석민에 대한 본질적 질문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3.19 06: 01

전력 누수에 고민했던 김기태 KIA 감독이 이번에는 조금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따라 팀의 전력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고민’이기도 하다. 최근 친정팀 KIA로 돌아온 윤석민(29)의 활용 방안이 그것이다. 갑론을박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접고 국내로 돌아온 윤석민은 국내 마운드 복귀를 앞두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 결과 예상보다 빠르게 몸 상태가 올라오는 중이다. 지난 15일 광주에서 열린 LG와의 시범경기에 등판해 18개의 공을 던졌다. 1이닝 무실점 호투였고 최고 구속은 146㎞까지 나왔다. 코칭스태프, 팬들의 기대감을 키우는 투구였다. 겨울 동안 바람 잘 날이 없었던 KIA에 찾아온 한줄기 희망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 보직이 미정이다. 최종 결정권자인 김기태 감독은 말을 아낀다. 아직 남은 1~2경기의 등판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심산이다. 선발과 마무리 사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를 바라보는 팬심은 설왕설래다. 당연히 선발로 써야 한다는 의견, 팀 사정을 고려해 마무리로 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갈린다. 그렇다면 일단 90억 원을 머릿속에서 지워보자. 순수한 ‘윤석민 마무리론’은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까.

▲ 최고 투수의 마무리 투입, 효율적인가
이미 많은 논의가 진행된 부분이다. 우리는 물론, 미국과 일본에서도 일찌감치 이런 논의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에 가깝다. 효율성 때문이다. 팀 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최고 투수’를 최대한 활용해야 함이 당연하다. 예전처럼 불펜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에이스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선발로 쓰는 것이 답이다. 이닝소화의 측면에서 단순한 답을 찾을 수 있다.
KIA는 지난해 투수들이 총 1121⅔이닝을 소화했다. 이 수치가 올해도 비슷하게 나오고 윤석민이 150이닝을 던진다고 가정하면 KIA는 전체 이닝의 13% 가량에서 최고 투수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마무리는 그 비율이 떨어진다. 지난해 전업 마무리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선수는 손승락(넥센)으로 62⅓이닝이었다. 이 경우 KIA는 윤석민을 5.5% 정도밖에 활용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MLB)에서 불펜투수들의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디트로이트가 불펜이 불안하다고 맥스 슈어저를 전업 마무리로 보내지는 않았다.
이는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도 드러난다. 프로야구 통계전문사이트인 ‘KBReport’(www.kbreport.com)에 의하면 지난해 불펜투수 중 최고 WAR을 기록한 선수는 넥센의 조상우(1.46)로 26위였다. 선발투수 25명이 조상우의 위에 있었고 KIA의 에이스 몫을 했던 양현종의 WAR은 5.13이었다. 물론 선발과 불펜투수를 WAR의 동일한 지표 위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선발-마무리를 모두 할 수 있다면 선발이 팀에 더 공헌할 수 있음을 유추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비슷한 유형인 한현희는 올해부터 선발로 뛴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이견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 ‘불펜만 고민?’ KIA의 사정은 어떤가
김 감독은 결단력이 있는 지도자다. 그 결단은 결코 즉흥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주위에 이런 저런 조언을 많이 듣는 유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비교적 명확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이 고민하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팀 사정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팀의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방안을 이리저리 짜보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팀 사정을 놓고 볼 때, 윤석민 마무리론은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분명 있다.
KIA는 불펜이 고민이다. 새로운 마무리후보로 낙점된 심동섭은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다. 그러나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시범경기 페이스도 썩 좋지 않다. 김태영 최영필 등으로 이뤄진 필승조도 큰 위압감을 주지는 못한다. 여기서 윤석민이 들어오면 최후의 보루가 생긴다. 불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선발 자원이 ‘많아 보이는’ 점도 있다. 기본적으로 양현종과 두 외국인 선수(험버, 스틴슨)가 버틴다. 여기에 ‘임트리오’(임준섭 임기준 임준혁)가 있고 김병현 서재응 김진우라는 베테랑들도 잠재적인 후보군이 될 수 있다.
KIA의 사정상 ‘선발보다 마무리가 더 급하다’라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큰 울림이 있다. 역시 KIA의 사정과 맞물린 이야기다. KIA는 객관적 전력에서 강하지 않다. 시즌 프리뷰는 하위권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전철이 되풀이될 수 있다. 마무리로 윤석민을 기용하는 강수를 두고도 그마저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다.
KIA는 지난해 5회까지 뒤진 경기에서의 승률이 1할1푼5리(리그 9위)였다. 7회까지 뒤진 경기의 승률은 더 떨어져 7푼7리(8위)였다. 그 탓에 마무리투수의 등판이 제한됐다. KIA의 지난해 세이브 상황은 85번으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었다. 마무리 하이로 어센시오는 46차례 등판했지만 그 중 세이브 기회는 절반 정도인 27번이었다. 소화이닝은 46⅔이닝이었다. 오히려 중간에서 나선 최영필(53⅔이닝) 김태영(50⅔이닝)의 소화이닝이 더 많았다. 올해 성적이 나아질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시급한 부분은 선발이라는 의견도 있다. KIA의 지난해 블론세이브는 21차례다. 기회가 많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절대적인 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LG도 21번, NC는 19번, 삼성도 18번이었다. 오히려 더 차이가 난 부분은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였다. KIA는 42번의 QS를 기록해 리그 7위를 기록했다. 1위 삼성(63번), 2위 NC(59번)와의 격차가 대번 눈에 들어온다.
▲ ‘리빌딩? 성적?’ KIA의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 현재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큰 고민을 하고 있는 인물은 단연 김기태 감독이다. KIA는 김 감독을 선임하며 ‘리빌딩’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현장의 감독이 성적에 신경을 끄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독도, 선수도 이기고 싶어 한다. 그리고 리빌딩은 그 승리 속에서 완성된다. “KIA 불펜은 약하니 1~2점은 9회에도 뒤집을 수 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줘서는 곤란하다는 것은 분명 일리가 있다. 김 감독은 LG 감독 시절 봉중근을 마무리로 돌려 그런 인식에 완전히 쐐기를 박았던 전례가 있다. 그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법하다.
그래서 무엇이 옳다 그르다 딱 잡아 말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이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그려가는 리빌딩이냐, 혹은 예정을 조금 앞당겨 승부를 거느냐의 문제다. 만약 전자라면 윤석민 보직은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컨디션이 다 올라올 때까지 중간에서 뛰게 하다 선발로 합류시키면 된다. 아니면 아예 2군에 내려 보내 1~2차례 실전 선발을 경험하게 한 뒤 1군에 올리는 방법도 있다. 윤석민에게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을 심어주고 리빌딩의 선봉장으로 세우면 될 일이다. 그리고 심동섭 등 다른 젊은 선수들은 KIA 미래 불펜을 이끌어 갈 동력으로 육성시키면 된다.
후자라면 좀 더 조심스레 윤석민을 다룰 필요는 있다. 마무리도 중압감이 큰 보직이다. 팔이 빠져라 전력을 다해야 한다. 심리적·육체적으로 준비가 다 된 상태를 가늠해야 한다. 또한 한 번 결정한 사안이 흔들리면 팀에 악영향이 생긴다. 선수에게 잦은 보직 이동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혼란스러울 수도, 책임감에 흠집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윤석민은 꽃놀이패가 될 수 없다. 김 감독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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