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춘분이 지나 완연한 봄을 맞은 영화계는 요즘 여름 시장에 대한 전망과 분석을 내놓느라 임직원들의 야근이 잦습니다. 엄동설한에 이듬해 여름 시장을 준비하는 패션계만큼은 아니지만 대기업 투자배급사들이 빅 마켓인 7~8월을 앞두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벌써부터 다양한 경우의 수와 묘수 찾기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올 여름 극장가는 언제나처럼 사이즈의 대결이 재연될 것 같습니다. 투자 배급사마다 100억 넘게 든 자사 빅 버짓 영화를 선발로 내세워 영업 이익 극대화를 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여름 ‘명량’으로 함포고복한 CJ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7월, ‘해적’을 연출한 이석훈 감독의 ‘히말라야’를 8월에 각각 배치할 계획입니다. 쇼박스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을 일찌감치 7월 영화로 포지셔닝했고, 롯데는 외화 ‘미션 임파서블5’와 설경구 여진구 주연 ‘서부전선’을 7~8월 여름 방학 텐트 폴 영화로 낙점한 상태입니다.
이중 제작비 면에서 가장 억 소리 나는 국산 영화는 ‘암살’입니다. 쇼박스와 최동훈의 마지막 계약 작품으로 알려진 ‘암살’은 순제가 이미 200억을 넘었다는 괴담이 돌 만큼 물량 공세가 만만치 않은 시대극입니다. 쇼박스는 150억을 다소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부인하지만, 중국 로케이션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200억 추월 소문이 후반 작업 업체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돌고 있습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고 50억의 P&A 비용이 추가된다고 가정하면, 천만 가까이 관객을 동원해야 겨우 밑지지 않는다는 계산입니다.

흥미로운 건 CJ와 쇼박스의 간판 주자인 ‘베테랑’과 ‘암살’이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서블5’ 스케줄을 살피며 개봉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초 ‘베테랑’과 ‘암살’은 7월 중순 여름 신호탄 성격으로 1라운드 링에 오를 계획이었지만, 최근 두 영화 모두 ‘미션’이 개봉하는 7월 30일 개봉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두 영화가 한미 동시 개봉이 확정된 ‘미션’과 같은 날 붙겠다는 건 ‘판을 키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감 부족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게 합니다.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고 자신 있게 먼저 치고 나가겠다고 한 영화가 갑자기 개봉을 늦춘다는 건 여러모로 역풍을 의식한 자세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설날 영화였던 ‘베테랑’은 비수기에 틀기엔 아까울 만큼 영화가 잘 나왔다는데 이래저래 ‘미션’ 눈치를 보게 됐습니다.
‘미스터 고’와 ‘군도’로 2년 내리 서늘한 여름을 보냈던 쇼박스는 올해 ‘암살’로 설욕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하지만 최동훈의 시나리오 중 이례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린 영화인들이 많았다는 점, 여기에 고비용 구조와 천하의 최동훈도 한 번은 삐끗할 때가 됐다는 비과학적 미신까지 덧보태지며 먹구름 섞인 이야기가 하나 둘 나옵니다. 열거한 작품 모두 어느 정도 흥행이 검증된 만큼 예상을 크게 비껴가진 않겠지만, 가장 힘겨운 상대가 기대치라는 점에선 누구 하나 마음 편치 않을 겁니다.
이 와중에 CJ가 자신들의 오래된 파트너 파라마운트를 놓친 게 뼈아프다는 쓴 소리도 들립니다. 양사는 15년 넘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미션 임파서블’ 같은 영화로 달콤한 수익을 공유했지만 작년 말 사이가 틀어지며 파트너십에 금이 갔습니다. 결국 둘은 오해를 풀지 못 했고, 파라마운트는 새 파트너로 롯데를 선택하며 CJ에 등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만약 CJ가 파라마운트와 기존 동맹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아마 여름 시장을 놓고 지금처럼 골치 아프기 보단 오히려 행복한 고민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션’과 ‘베테랑’ ‘히말라야’라는 킬러 콘텐츠로 올 여름 시장도 자신들의 우세로 일찌감치 리드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CJ와 파라마운트의 결별은 이 세계엔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주는 사례입니다.
투자사들은 머리에 쥐가 날 지 몰라도 관객들은 어느 해 못지않게 골라 볼 영화가 많다는 점에서 올 여름도 즐거운 뷔페식당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도 ‘명량’처럼 랍스타 같은 압도적인 메뉴가 나올 지, 아니면 서너 작품이 골고루 시장을 나눠먹으며 의외로 싱거운 상차림이 펼쳐질지 침이 고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작품만이 끝까지 살아남아 관객의 젓가락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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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