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예능인도 아닌데, 한 자리에서 3년이란 시간을 채웠다. 그냥 시간을 보낸 게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오고가는 많은 인연들을 받아들이고 보내며 어느덧 터줏대감의 자리에 올랐다. 스스로는 영화제가 아닌 연예대상에 서는 자신의 모습이 멋쩍다고 말하지만 관객이든, 시청자들이든 자신을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배우 차태현은 그렇게 주어진 또 하나의 배역을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차태현은 지난 22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1박2일')에서 홀로 함백산 정상에 위치한 KBS 중계소에서 야외 취침을 해야 할 운명에 놓였다. 멤버들과 눈 위에서 깃발을 쓰러뜨리지 않는 게임을 하고 난 결과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불운에 좌절했지만, 차태현은 곧 함께 남은 VJ와 PD를 위해 직접 중계소 부엌을 빌려 요리를 하며 생존력을 보였다. 중계소 냉장고 속에서 꽁꽁 언 돼지고기 한 덩이와 햄을 발견한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물었다. 이후 얼어 있는 고기에 김치와 햄을 뚝뚝 끊어 넣고, 라면 스프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는 그럴 듯하게 완성됐다. 함백산에서 야외취침을 할 세 사람은 정답게 식사를 마쳤다.

차태현이 이날 홀로 야외취침자로 뽑힌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혼자서 스태프들과 함께 텐트를 친 그는 오랜만에 ‘1박2일’을 해오며 느꼈던 속내들을 꺼내놓았다. 바깥은 영하 20도가 넘었고, 중계소 직원들은 “송장 치른다”며 안에 들어와 잘 것을 권했지만 차태현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1박2일’ 특유의 야생 정신을 발휘했다. 텐트 안에서 그는 “(‘1박2일’은) 3년이 1차 목표였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질 줄 상상도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시즌2에서 시즌3까지 함께 하고 있는 그는 “버라이어티 이런 게 많이 생기면서 오래된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프로그램이 끝난다면) 저들은 너무 슬프겠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허한 정도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다가오게 될 ‘1박2일’의 마지막 날을 가늠해 본 걸까?
차태현은 이어 “영화를 보는 게 취미이자 일인데 너무 좋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나는 뭐하고 있지? 3년째 연예대상만 나가고 있으니까 나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예능인으로도 자리를 잡은 차태현이 느끼는 불안감이 전달됐다.
하지만 그는 “연기는 하면 할수록 힘들고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고, 그런데 이게 정말, 나의 욕심이 아닐까 싶었다. 내 연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웃으려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코미디를 버릴 수 없다. 웃음을 준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그게 보람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예능인으로, 코미디 배우로의 길을 가고 있는 이유를 밝혔다.
최초의 단독 야간취침을 통해서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예능인이자 배우인 차태현의 고민과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었다. 3년간 프로그램을 지켜 온 그는 다시 갈림길 위에 자신을 세웠고, 배우이자 예능인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정하며 다시금 ‘1박2일’ 멤버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 같은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감동을 줬다.
한편 '1박2일'에서는 함백산으로 봄맞이 등산여행을 떠난 멤버들의 모습이 지난주에 이어 방송을 탔다. 이날 방송에는 다비치 강민경이 등산전문가로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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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