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한 이후 2015년 구상에 절치부심했던 염경엽 넥센 감독은 지난해 대만에서 열린 2군 캠프를 찾았다. 그 때 눈에 들어온 선수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기량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그 가능성 하나를 믿고 1군 전지훈련에 참가시킨 지 3개월 후. 염 감독의 믿음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염 감독의 시선이 향한 선수는 바로 좌완 신인 김택형(19)이다. 전지훈련과 시범경기를 거치며 가능성을 그라운드로 옮겨오고 있는 김택형에 대해 염 감독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제2의 조상우 만들기’ 프로젝트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동산고를 졸업하고 넥센의 지명을 받은 김택형은 이번 시범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넥센 마운드의 신예로 손꼽힌다. 시범경기 5경기에서 5⅔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단 1할1푼8리에 그쳤다. 아직 프로무대가 낯선 신인이 좋은 투구로 베테랑 타자들과 정면으로 겨루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염 감독의 미소는 점점 얼굴 전체로 번지고 있다.

22일 SK와의 시범경기 최종전 이후에도 염 감독이 가장 칭찬한 선수는 김택형이었다. 염 감독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좌완 김택형이라는 자원을 얻은 게 큰 수확이다”라고 김택형을 지목했다. 22일 경기를 앞두고도 김택형에 대한 염 감독의 기대는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처음에 캠프에 가서 봤는데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1군 캠프에 합류시켰다”라고 김택형과의 첫 만남을 회상한 염 감독은 “이제 싸울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 정도 수준이 된 것도 우리로서는 희망”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고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김택형의 구속은 137~138㎞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평균적으로 142~143㎞를 던진다. 가장 빠를 때는 146㎞도 던지고 있다. 염 감독은 “왼손 타자를 잡을 수 있는 구종이 있다. 구속은 더 올라갈 것이다. 147~148㎞까지는 나올 것 같다”고 김택형에 대한 기대치를 숨기지 않았다.
다만 당장 즉시전력감으로 쓰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게 하겠다는 구상이 먼저다. 염 감독은 “지금은 과정이다. 많은 경험을 시켜주면 내년쯤에는 좋은 투수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올해 당장의 성적을 위해 무리하게 투입시키기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지난해 리그 최고의 불펜 요원 중 하나로 발돋움한 조상우의 전례를 떠올리게 한다. 염 감독은 조상우를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으로 점찍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게끔 철저한 계획을 짰다. 이런 염 감독의 구상 속에 조상우는 투구수, 이닝 등 모든 부분에서 하나하나 계단을 밟았다. 그 단계를 모두 밟은 조상우는 야구계가 상상하는 이상의 투수로 커 있었다. 염 감독은 “김택형도 조상우와 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흥미로운 시선을 유지했다. 염 감독의 치밀한 전략 속에, 넥센은 그 찾기 어렵다는 ‘좌완 비밀병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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