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풍문’, 뻔하지 않은 이런 드라마도 하나 있어야
OSEN 표재민 기자
발행 2015.03.24 08: 47

‘풍문으로 들었소’는 어디 하나 뻔한 구석이 없다. 남녀간의 사랑이나 갈등, 아니면 한 인간의 처절한 복수, 따뜻한 가족애를 다루는 흔히 볼 수 있는 지상파 드라마가 아니다. 방송을 보면서 드라마 내용도 내용이지만 SBS라는 채널 로고가 더 놀랍다는 반응이 심상치 않은 것도 지상파 드라마가 뻔한 드라마라는 젊은 시청자들의 볼멘소리를 뒤집는 이야기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일 터다.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자체최고시청률을 갈아치우며 선방하고 있다. 24일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3일 방송된 ‘풍문으로 들었소’ 9회는 전국 기준 10.7%를 기록, MBC ‘빛나거나 미치거나’(11.4%)를 근소한 차이로 추격 중이다. 보통 동시간대 경쟁작이 사극이고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면 후발 주자가 힘겨운 싸움을 하기 마련인데 ‘풍문으로 들었소’는 회차가 쌓일수록 시청률 탄력을 받는 중이다.
‘아줌마’, ‘아내의 자격’, ‘밀회’ 등을 성공시킨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가 만들어내는 블랙 코미디는 지상파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이색적인 장르라는 한계에도 안방극장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화제성의 척도인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매번, 그리고 오래도록 오르며 젊은 시청자들까지 점령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에는 드라마가 가진 기본적인 내공이 만만치 않기 때문.

‘풍문으로 들었소’가 표방하는 이야기는 제왕적 권력을 누리고 있는 상류층의 위선과 뒤틀린 욕망을 통렬하게 풍자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부와 혈통의 세습을 누릴 수 있게 일조하는 중하위층의 속물근성을 맹렬하게 꼬집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보면 전형적인 접근이 없다. 갑인 한정호(유준상 분)와 최연희(유호정 분)의 횡포를 담으면서도 갑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을 서봄(고아성 분) 가족의 반기를 그린다. 도리어 갑이 을에게 휘둘려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갑인지 을인지 구분이 안 되는 갑의 수행 비서들은 언제나 침착하게 갑을 인형놀이 하듯 다루고 있다.
이들은 정호와 연희가 나름대로의 치밀함으로 계획을 세웠을 때 이를 하찮게 여기는 것을 숨기면서 수행을 하고, 한발짝 떨어져 이 계획들이 두 사람의 생각과 달리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마치 비웃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갑인 정호와 연희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듯 보이나 이들의 더러운 민낯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보며 하나쯤은 딴생각을 품는 모습으로 갑의 거짓과 이중성을 풍자하는 역할을 한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을 마치 ‘모두 까기’를 하듯 성역 없이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보통 코미디 드라마가 많이 가진 자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데 이 드라마는 대상의 구분이 없으니 좀 더 풍성하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웃음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제작진이 다채롭게 마련된 상을 먹는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열연도 빼놓을 수가 없다. 지질한 연기로 매회 웃음을 안기는 이준, 드라마가 전개될수록 꿈틀대는 을의 욕망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고아성, 풍자의 먹잇감으로서 거침 없이 망가지는 유준상과 유호정을 비롯해 잠깐 나오는 배우들마저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첫 연기 도전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밉상으로 완벽히 변신한 백지연, 을의 비애이자 속물근성을 이중적을 연기하는 장현성과 윤복인, 수행 비서이자 집사로 감초 연기를 톡톡히 하는 서정연-김학선-길해연-장소연 등이 드라마의 없어서는 안 될 촘촘한 퍼즐 역할을 하고 있다.
제작진이 깔아놓은 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이 조화를 이루며 드라마는 어떻게든 보고 싶은 드라마로 강하게 인식됐다. 언젠가부터 지상파 드라마는 똑같고 볼 게 없다는 젊은 시청자들의 외면이 방송계에서 제법 크게 위기의식으로 여겨지고 있는 가운데 가끔씩이라도 이런 드라마 한 편쯤은 안방극장에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jmpyo@osen.co.kr
'풍문으로 들었소'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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