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 "힐링도 일침도 관심없다…그냥 웃길래"[인터뷰①]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5.03.24 09: 06

유병재는 유명인이다. 대중들,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대부분이 그를 쉽게 알아본다. 물론 이들 중에는 정확한 그의 정체를 모르는 이도 상당수. 일부는 그를 코미디언으로, 또 일부는 그를 작가로서만 안다. tvN 'SNL코리아'의 '극한직업' 코너 덕분이다. 예컨대 그가 이미 싱글 음반을 낸 가수라거나,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07학번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코미디언 겸 작가 겸 가수인 유병재가 이번엔 드라마에 도전한다. 오는 4월 10일 방영예정인 tvN 드라마 '초인시대'를 통해서다. 유병재는 '초인시대'에서 대본과 주연을 동시에 꿰찼다. 영화에서 주연과 감독으로서 1인 2역을 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었지만, 한국의 드라마에서 메인 작가와 주연배우를 동시에 소화했던 선례는 없었다. 그야말로 유병재의 '극한 도전'이다.
◇ 삼포세대에 초능력 부여…웃픈 '초인시대'

평일 점심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꽤 지쳐 보였다. 'SNL코리아'를 통해 5분 이내의 콩트를 만들다, 갑자기 긴 호흡의 드라마를, 더욱이 주연과 작가를 병행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인터뷰 첫 마디였다.
"쉽지 않아요. 콩트는 빠르면 반나절이면 촬영을 전부 소화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는 한 번에 20시간을 넘게 풀로 촬영하기도 해요. 대본 분량도 마찬가지죠. 5분짜리는 4~5장에, 개연성을 조금은 무시해도 됐었거든요. 근데 드라마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상황을 엮는 개연성 등에도 더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아요. 호흡이 길어지다보니 톤 자체도 다르고요."
빡빡한 스케줄로 비록 몸과 마음은 지쳤지만, 드라마 '초인시대'의 작업은 유병재에게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일임에는 분명했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일, 좋아하는 일을 이뤄냈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 비슷한 것도 섞여있었다.
"솔직히 행복해요. 가식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너무 일찍 이뤄낸 기분이거든요. 제가 글을 쓰고 직접 연기를 하는 건 '극한직업'을 통해 일찍 이뤘는데, 그 덩치가 '초인시대'로 엄청나게 커져서, 나중에는 도대체 뭘 해야하나 걱정할 정도죠."
보는 이를 크게 웃게 만들었던 'SNL코리아-극한직업'이 유병재의 손을 거쳐 탄생한 콩트라는 걸 아는 이라면, 드라마 '초인시대' 역시 그저 뻔한 드라마는 아닐 거라 예상했을 터. 실제로 이 '초인시대'는 '스물다섯까지 동정이면 초능력을 얻게 된다'는 만화 같은 독특한 설정이 주요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데만 그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외피는 히어로, 그 안에는 취업과 사회 초년생 나이의 제 또래들의 이야기가 있어요. 단순히 입사 면접에 떨어지고 하는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닌, 깊이 있는 현실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로 대변되는 무능력한 우리 세대에 '초능력'을 줘보면 어떨까? 결론적으로 초능력이 있어도 잘 안 되는 내용이죠. 영웅들조차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싶었어요. 드라마가 총 8부작인데, 현재 4부까지는 완고 비슷하게 했고, 뒷부분은 여전히 정리하는 중이에요."
◇ 힐링? 일침? 웃기는 게 무조건 '1번'
'SNL코리아'로 특유의 '병맛 유머'를 선보였던 그는 콩트 속 역할과는 사뭇 다르게, SNS상에선 재치 넘치는 촌철살인 멘트로 유명하다. 이른바 '유병재 어록'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라든가, '국민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집중적으로 간지럽힐 수가' 등의 형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 모든 것들이 돌아오는 반응처럼 뚜렷한 목적성은 없었다고 손을 내젓는다.
"바른 생활을 하지도 않아요. (글을 쓸 때) 의식하는 건 있지만, 양면은 있죠. 어쨌든 웃기는 게 무조건 1차 목적이에요. 직업상 기존 사태에 대해 재치있게 바꾸고 각색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거죠. 그게 '감화'나 '계몽'으로 보여지는 것도 조금은 오글거려요. 일침이요? 그건 이순재 선생님 같은 분이 하시는 거죠. 이제 스물 여덟이 누굴 가르쳐요."
유병재가 공들여 만들고 있는 '초인시대'도 마찬가지다. 삼포세대를 위한 힐링, 위로 차원에서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따위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 뿐. 그 이상의 몫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판단이다.
"'힘내라' '아프니깐 청춘이다', 이런 건 절대 아니에요.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죠. 모습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힘이 될 수 있다 생각하거든요.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들을 때 갑자기 예고없이 기운이 나거나 슬퍼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주 조금 웃기게 그리는 것 뿐이에요. 오히려 진지하고 싶어도, 다시 웃긴 축으로 옮겨오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제발, 가볍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웃기는 게 1번'이라고 강조한 그도 '초인시대' 대본을 쓰며 고민에 휩싸였던 때가 있었다. 여배우로 작품에 출연해 자신과 호흡하는 걸그룹 시크릿 멤버 송지은과의 러브신이 바로 그 것. '송지은과의 러브신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모습에서, 대본을 쓸 당시의 그의 적잖았던 고심이 전해지는 듯 했다.
"분명 웃기고 싶은 코드 중 하나가 맞아요. 대본을 쓴 작가가 직접 주연을 맡았는데, 극중 여배우와 키스신을 넣는 방식 말이죠. 그렇게 사심 대본이 되면서, 송지은 씨 표정이 썩어있는 거죠. 그런데 아직은 (대본에) 없어요. 무례해 보일수도 있고, 그 분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러워요. 이런 게 사실 어려워요. 코미디언은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덜 써야 더 웃긴 게 나올 수 있는건데, 성격 자체가 신중한 편이라서 가끔은 '코미디와 안 맞는 건 아닌가' 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해요."
◇ '유재석 되기'가 목표 아냐…"사랑 하고파"
'초인시대'는 4월 10일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30분 tvN을 통해 방송된다. 현재 편성 조율중인 KBS 2TV 드라마 '프로듀사'가 별 무리없이 금, 토요일 오후 11시 방영이 확정될 경우 5월부터는 동시간대 경쟁작이 된다. 남자 주연과 작가를 놓고 보면, '유병재 vs 김수현', '유병재 vs 박지은' 구도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 가능성을 열어 놓고, '초인시대'만의 전략을 물었더니 또 한 번 웃음을 안겨준다.
"저희보다는 한참 위에 있는 작품이에요. 그런 만큼 열악한 환경, 언더독(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말)으로서의 장점을 어필하려고 해요. 주인공이 일단 저니깐요. 복싱 선수가 링에 오르기 전에, '몸이 안 좋다'고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처럼요. 그런 약점들을 어필하는 데 주력하겠어요. 그냥 '프로듀사' 같은 작품이 거론될 때 언급이라도 되고, 관심이라도 가져주면 그걸도도 만족해요. 그러면 몰랐던 분들도 인터넷이나 SNS로 클립 몇개라도 봐주시겠죠."
유병재가 이루고 싶은 야망, 인생의 목표점의 끝은 어디일까. 작가로서의 흥행, 아니면 배우로서의 성공 등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유재석처럼 되기'나 '100억 벌기' 이런 목표는 없어요. '극한 직업'을 하면서 직접 쓴 대본을 다같이 나눠 읽고, 현장에서 집중을 받고, 큰 화면에 제 얼굴이 나오고, 이 모든 게 이미 제 깜냥에 넘치는 일들이죠. 욕심은 없어요. 지금처럼 하루하루 재밌고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일부러 꿈을 안 정해요. 꿈을 이뤄버리면, 그 뒤에 방황할 것 같아서요. 모든 것에 쉽게 질려하는 스타일인데, 이건(코미디) 유일하게 안 질려요. 그리고 어차피 할 줄 아는 게 코미디 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 흔한 롤모델조차 정해놓지 않았다는 유병재는, 인생의 최대의 목표로 '사랑'을 꼽았다. 물론 전 'SNL코리아' 조연출과 (막 되게 핑크빛은 아니지만) 열애중인 만큼 오해가 없도록, 일련의 설명도 덧붙였다.
"매번 이렇게 대답해요. '사랑을 하는 게' 인생 목표라고. 뚜렷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사랑'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명예, 권력, 능력, 우정, 좋은 것들이 참 많지만 사랑이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날 사랑하거나, 사람을 사랑하거나. 날 사랑하지 못하면 진짜 그건 끝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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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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