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작가가 평범한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아마도 할리우드가 아닐까. 국내는 임성한 작가 특유의 뜬금없는 장면들을 이해하기가 아직은 어렵다. '전 여친에게서 득녀', '세번째 결혼' 등 매일 핫이슈가 쏟아지는 할리우드면 몰라도.
임성한 작가는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백야'를 집필하며 매회 기함하게 하는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드라마 내용이 혹평을 받을지라도 물러섬은 없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것 역시 임 작가만의 배짱이자 마니아 층을 '열광'케 하는 요소다.
아이러니하게도 임 작가의 드라마가 '병맛' 코드로 욕을 먹을수록 시청률은 점점 오른다. '오늘은 또 어떤 기함 스토리가 벌어질까'하는 궁금증도 '압구정 백야'를 보게 하는 오묘한 매력이다. 지난 방송에서는 만우절 설정으로 배우들이 극 중 거짓말을 하는 뜬금없는 장면이 나왔다. 거짓말 장면에는 진지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시청자들까지 이들의 거짓말에 속았다. 전개상 왜 이런 장면이 나온 건지는 의아하다. 다만 임 작가의 작품이기에 '그러려니'하고 넘어간다.

임 작가의 저력은 분명 있다. 배우들의 실감나는 세밀한 대사는 물론 인간 관계에 있어서 여러 갈등 구조를 다방면에서 다룬다. 사소한 감정 변화까지 캐치해내는 관찰력은 임 작가를 지금의 자리까지 있게 한 힘이다. 그러나 그의 필력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다.
그는 17년 전 집필한 '보고 또 보고'에서 겹사돈을 그리며 일일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인 최고시청률 57.3%를 달성했다. 겹사돈은 최근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소재지만, 당시만해도 일일드라마에서 그려지기에는 매우 자극적인 소재였다.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결혼 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인기의 이유였다.

임 작가가 선택하는 소재는 자극적이고 신선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신선함이 도가 지나쳐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그러나 임 작가가 그려내는 이야기들이 아예 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할리우드 톱스타들 스캔들 중에는 '임 작가 급' 기함 스토리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또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다만 임 작가의 필력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국내는 아직 준비가 덜 됐다. 마니아 층이 임작가식 배우 죽이기나 기함 스토리에 열광할 뿐이다. 시대를 앞서간 상상력으로 '욕받이 드라마'가 된 '압구정백야'는 할리우드에나 가야 평범한 드라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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