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제외하면 국토 최남단이었다. 그래도 날씨가 꽤 쌀쌀했다. 적막한 동네가 체감온도를 더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이 적막을 깨는 것은 오로지 방망이에 공이 맞는 소리, 그리고 어떤 이들의 뜀박질 소리였다. 2013년 11월, 프로야구 10구단으로 창단한 kt의 심장은 남해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조범현 감독은 할 말이 많지 않았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이 명장의 머릿속에서도 kt는 ‘계산’이 안 서는 구단이었다. 실제 모든 선수들이 남해에 모인 것도 아니었다. 조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전국체전에 나간 선수들, 졸업 시험을 봐야 할 선수들이 있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막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은 선수들로 팀을 꾸려가야 할 형편이었다. 프로의 냉정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보인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라고.
강훈련밖에는 답이 없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또 뛰었다. 그 중에는 박세웅도 있었다. kt의 1차 지명을 받은 박세웅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굳이 말하면, kt의 남해캠프에서 최고 스타라고 할 만 했다. 그러나 또 굳이 말하면, 아직은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학생 신분이었다. 그런 박세웅은 당당하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박병호(넥센) 선배님과 만나도 자신 있게 던져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패기였다. 하지만 그 약속이 이뤄진다는 기약은 없었다. 박세웅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랬다. 당시 kt는 그런 팀이었다.

그로부터 약 10개월 뒤. 박세웅은 벽제구장에서 열린 경찰청과의 경기에 나섰다.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마지막 경기였다. 그리고 공동 다승왕을 확정지었다. 어투에서는 10개월 전보다 좀 더 어른스럽고, 또 성숙한 면이 느껴졌다. 퓨처스리그지만 한 시즌을 보내면서 얻은 것이 적잖은 듯 했다. 조 감독도 조금 더 말이 많아졌다. 리그를 끝내면서 선수들을 격려하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10개월 사이, kt는 조 감독의 늘어난 멘트만큼이나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2015년 3월. 박세웅은 시범경기에서 맹활약을 했다. 19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6이닝 동안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SK의 베테랑 타자들을 놀라게 했다. 1년 반 사이, 확실히 증명되지 않았던 가능성은 이제 ‘잘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희망으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었다. 1년 반 기다림의 결실을 앞둔 박세웅은 “매 경기에 올라갈 때마다 내 공을 자신 있게 던지고 싶다. 그렇다면 좋은 피칭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2013년 겨울, 남해의 그 때 이야기와 같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는 것이다.
박세웅의 성장은 kt의 성장을 대변한다. kt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1군 진입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았다. 마치 올 시즌 팀의 4선발로 내정된 박세웅처럼 말이다. 갓 졸업한 선수들을 데리고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던 시기가 있었다. 베테랑 선수들이 하나둘씩 합류하며 팀의 문화를 잡아가던 시기도 거쳤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 프리에이전트(FA) 영입 등 전력 보강을 통해 1군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2015년 3월 28일. 마법사들은 역사적인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물론 시행착오는 혹독할 것이다. 연패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전력이다. 전력상 ‘꼴찌는 맡아놓은 양상’이라는 말은 야구계에 진리처럼 통용된다. 패배에 아파하고 좌절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무덤덤해질 시기도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 성장통을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따라 향후 팀의 미래는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다행히 kt는 적어도 그 성장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그릇 자체는 만들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마법보다는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내의 마법이다. 남해의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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