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이 사람을 아십니까] (1)제2의 고종수 꿈꾸던 축구소년, 대구구장의 든든한 지킴이 되다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5.03.31 10: 59

야구장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조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코칭스태프, 혹은 프런트라고 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들이 조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매주 1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이야기를 OSEN이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삼성 라이온즈의 홈경기 경호 업무를 총괄하는 김진태(33) 팔공인터내셔널 안전관리부장. 2001년 친구와 함께 경기 진행 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뒤 대구구장이 삶의 터전이 됐다. 대구구장의 안전관리는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에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게 김진태 씨의 말이다.
경북 영주 출신 김진태 씨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제2의 고종수(수원 블루윙스 코치)가 되는 게 그의 꿈이었다. "야구에 야 자도 몰랐다. 정말 야구의 기본적인 룰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김진태 씨는 "2001년 친한 친구 녀석이 전화와서 '공짜로 야구보면서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데 함께 하자'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야구보다 축구가 더 좋다'고 했더니 '야구장 뿐만 아니라 축구장에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친구의 한 마디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김진태 씨가 말하는 자신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보디 가드(body guard)가 아닌 보디 가이드(body guide)"라고 표현했다. "선수단의 경호 업무 및 구장 안전관리 뿐만 아니라 대구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좌석 안내 역할을 하는 등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역할"이라는 게 그 이유다.
15년째 야구장에서 일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삼성이 경기에서 패할때면 취객들에게서 '야구 똑바로 하라'는 비난섞인 이야기를 듣는 건 예삿일이었다. 때로는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될 욕설을 분풀이 하듯 퍼붓는 수준 이하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김진태 씨는 "4년 전(2011년 6월 24일 대구 넥센전) 한 취객이 외야 펜스를 넘어와서 최형우에게 사인해달라고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지금도 형우와 그 이야기를 하곤 한다. 형우도 그 취객이 자신에게 무릎 꿇기 전까지 정말 무서웠다고 하더라. 요즘도 형우가 농담삼아 '진태형 일 좀 해요' 라고 핀잔을 준다"고 웃었다.
15년째 야구장에서 일하다보니 선수들과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삼성 뿐만 아니라 타 구단 선수 및 코칭스태프 그리고 프런트까지 그의 인맥은 넓다. 일부 선수들은 김진태 씨에게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한다. 그만큼 사이가 각별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진태 씨는 "상대가 누구든 진심으로 아무 조건없이 진심으로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며 "서로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마음을 주고 받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자신을 낮췄다. 선수들에게 야구 용품을 달라고 부탁할 법도 하지만 김진태 씨는 지금껏 그런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절대 없단다.
지난해까지 삼성의 대주자 스페셜 리스트로 활약했던 강명구(35)는 구단 측의 원정 기록원 제의와 현역 연장의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졌다. 평소 친형제처럼 지내던 김진태 씨는 강명구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명구형이 '너는 내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인데 왜 한 마디도 하지 않느냐'고 따진 적이 있다. 내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서운했나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명구형과 아주 가까워서 나의 한 마디에 명구형의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 채태인, 롯데 최준석 박종윤 이우민(개명 전 이승화) 이명우 등 1982년생 선수들은 김진태 씨에게 죽마고우와 다름없는 존재다.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언제나 힘이 되는 영원한 팬과 같은 친구랄까. 김진태 씨는 박종윤의 부상 소식에 자신의 일처럼 가슴아파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야구장에서 친구, 형, 동생 뿐만 아니라 평생의 동반자가 될 사람까지 만났다. "4년 전 기자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다. 본업을 잠시 접어두고 쉬는 사이 친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1주일 정도만 (아르바이트)할 계획이었는데 평생을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김진태 씨에게 야구장은 일터이다보니 조심스러울 수 밖에. 동료들도 모를 만큼 비밀 연애를 고수했었단다. 오는 12월 백년가약을 맺을 예정. 김진태 씨는 "차근차근 준비는 하고 있는데 시즌이 시작돼 쉬는 날에도 정신이 없다. 일부 선수들은 내게 '니가 선수도 아니고 왜 12월에 하냐'고 핀잔도 주지만 나 역시 그때가 아니면 시간이 없다"고 웃었다.
김진태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야구도 공짜로 보고 유명 선수들과도 친하니 정말 부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세상 모든 일에 일장일단이 있듯 김진태 씨 역시 마찬가지. 야구선수처럼 남들 쉴때 일하고 남들 일할때 쉬다보니 월요일이 유일한 휴식일이다. 친한 친구가 일요일에 결혼을 하거나 돌잔치를 해도 얼굴을 비춰주는 게 정말 어려울 때도 많다. 그럴때마다 미안한 마음 뿐. "가끔씩은 평범한 걸 할 수 없다는 게 서운할때도 있다"는 게 김진태 씨의 속내.
삼성은 올 시즌이 대구구장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다. 내년부터는 새 구장에서 시즌을 맞이한다. 김진태 씨에게도 대구구장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대구구장이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니 기분이 묘하다. 선수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아쉬움도 많이 든다. 그렇기에 잘 마무리하고 싶다. 선수들은 올 시즌 대구구장에서 마지막 우승을 달성하고 새 구장에서도 우승을 하고 싶다던데 나 역시 이곳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역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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