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난달 29일 목동 넥센전에서 5-3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그 과정은 한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불펜투수들이 5이닝을 1점으로 잘 막았지만 아슬아슬한 장면이 몇 차례 있었다. 5회 안영명, 6회 박정진이 넥센 타선을 상대로 두 번의 만루 위기를 넘기는 게 승부처였다.
안영명은 5회 볼넷과 안타 그리고 몸에 맞는 볼로 1사 만루 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4번 박병호에게 5개의 공 전부 변화구만 던지며 패턴에 변화를 줬다. 슬라이더와 포크볼에 너클커브를 결정구 삼아 헛스윙 삼진 처리했고, 김민성도 4개의 공 모두 변화구로 던져 중견수 뜬공 잡고 실점 없이 막았다.
안영명은 개막전에서 7회 유선정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갔는데 4개의 공 모두 직구였다. 첫 타자 상대로 직구 제구가 되지 않았다. 이튿날 경기에도 유한준을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킬 때도 몸쪽 직구가 빗나갔다. 직구 제구가 흔들리자 과감하게 변화구로 패턴을 바꾼 게 주효했다.

6회에는 2사 2루에서 나온 박정진도 박헌도에게 볼넷을 내준 뒤 서건창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았고, 이택근에게 다시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를 이어갔다. 유한준에게 1~3구 모두 볼을 던지며 제구난을 보였다. 하지만 풀카운트를 만든 뒤 변화구를 결정구로 던져 좌익수 뜬공 잡고 추가실점 없이 막았다.
김성근 감독은 두 투수에게 LG-SK 시절 제자였던 신윤호(은퇴) 이야기를 꺼냈다. 김 감독은 "옛날 신윤호 케이스를 얘기해줬다. 신윤호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봤지만 스트라이크가 안 들어가서 난리였다. 그래서 직구가 아닌 슬라이더를 가운데로 던져서 카운트를 잡으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타자들이 볼에 쉽게 손을 대줬다. 나중에는 슬라이더의 제구가 기가 막혔다"고 떠올렸다.
김 감독은 "안영명이나 박정진이나 제구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있지만 그것에 너무 신경 쓰면 안 된다. 오히려 그게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영명·박정진 모두 처음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직구 제구가 되지 않아 흔들리는 면이 있는데 오히려 변화구 위주로 제구를 잡고 승부하면 어디로 올지 모르는 직구가 타자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 감독은 태평양 시절 최창호와 정명원도 마찬가지 케이스였다고 했다.
고질적인 제구 불안을 안고 있었던 신윤호는 이 같은 투구 패턴으로 짧지만 굵은 전성기를 보냈다. 김성근 감독이 LG 감독대행을 맡았던 2001년 70경기 15승6패18세이브 평균자책점 3.12로 위력을 떨치며 투수 골든글러브에 MVP 투표 2위에 올랐다. 당시 9이닝당 볼넷이 4.9개로 많은 편이었지만, 강력한 구위를 살리며 단점 메우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했다.
김 감독은 "결국 멘탈이다. 안영명도 박병호에게는 자신감을 갖고 있으니까 마음 놓고 던지더라"며 "개막 2경기를 통해 투수들을 어떤 상황에 써야 할지 알았다. 안영명과 박정진은 첫 타자를 내보내는 스타일이다. 몰랐으면 교체시켰겠지만 이제는 놔둬도 되는구나 싶다. 권혁은 원래보다 2~3회 앞에서 던지는 게 좋다. 박정진이 뒤로 가고 권혁이 중간으로 들어오는 게 낫겠다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14년 전 신윤호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놓아 최고의 투수로 만들었다. 이제는 한화 투수들의 장단점에 따른 활용법도 하나둘씩 파악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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