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신화가 잠시 멈췄다. 삼성화재 왕조의 시작이었던 라이트 김세진(OK저축은행 감독)이 삼성화재의 8연패 도전을 좌절시켰다.
삼성화재는 1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4~2015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1-3(19-25, 19-25, 25-11, 23-25)으로 제압당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단 한 세트만 내준 OK저축은행은 완벽한 마무리로 창단 첫 우승을 달성했다.
반대로 1차전과 2차전을 모두 0-3으로 패한 삼성화재는 3차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1세트 6-6까지는 상대가 1점을 얻으면 즉각 반격하며 계속 동점을 만들었지만 송명근의 활약에 흐름이 기울어진 뒤에는 8-16으로 크게 뒤진 끝에 1세트를 내줬다. 2세트에서도 무너진 삼성화재는 3세트 반격했지만 그게 마지막 불꽃이었다. 4세트는 비교적 접전을 이뤘으나 마지막에 웃은 것은 OK저축은행이었다.

그렇게 삼성화재의 챔피언결정전 7연패 신화가 끝났다. 2007~2008 시즌부터 정규시즌 우승을 하지 못했을 때도 챔피언결정전의 승자는 항상 삼성화재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팀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플레이오프를 통해 올라온 OK저축은행의 젊은 힘과 객관적 전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시즌 중 입대한 박철우의 공백도 느껴졌다.
신치용 감독 역시 흐름이 넘어갔다는 것을 인정했다. 3차전 직전 있었던 사전 인터뷰에서 신 감독은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선수)본인들도 다 안다. 리듬을 못 찾으니 내가 봐도 어떻게 이렇게 안 될까 싶다. 무슨 마법에 걸린 걸까. 어제 훈련도 하지 않았다. 편안히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삼성화재의 19번째 챔피언결정전이다. 챔피언결정전을 안 뛰어본 선수들이 많다. 5~6명이 청심환을 먹는 걸 봤는데 안타깝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하나라도 되는 선수가 있어야 치고 나가는데 아무도 안 된다. 레오도 유광우도 그렇고, 라이트는 벌벌 떤다. 1세트를 먼저 따야 한다”며 선전을 위한 필요조건을 언급했는데, 현실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1세트 중반부터 무너질 조짐을 보였고, 그대로 경기가 넘어갔다. 그나마 3세트에 이겨 "팬들을 위해 시시하게 끝나지 않도록 죽어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신 감독이 이룩한 ‘시스템 배구’는 이번 시즌에도 정규시즌 우승의 뿌리가 됐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레오 1명의 공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삼성화재에 비해 루트가 다양했던 OK저축은행은 챔피언결정전 최초로 무실세트 우승이라는 진기록에도 근접했을 정도로 삼성화재에 우위였다. 경기대 3인방(이민규, 송희채, 송명근)을 비롯한 선수들이 보여준 '젊음의 힘'이 빛난 3경기였다.
삼성화재를 3연승으로 누른 OK저축은행의 우승은 향후 V-리그 남자부 판도의 재편을 뜻한다. 베테랑 위주인 삼성화재 신화의 주역들은 한 살을 더 먹지만, 젊은 OK저축은행의 기둥들은 더욱 기량이 무르익을 때다. V-리그 출범 이후 유광우를 제외하면 특급 신인을 얻은 적이 없는 삼성화재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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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