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는 참 힘들다.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있다가 딱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대타 타율은 생각보다 낮다. 작년 팀 타율 1위 삼성의 타율은 3할1리였는데, 대타 타율은 2할2푼3리에 불과했다. 대타 타율 1할대(두산 .194) 팀도 있었다. 팀 타율보다 대타 타율이 높은 팀은 SK(팀 타율 .291, 대타 타율 .305) 뿐이었다.
당연히 그렇다. 일단 대타는 여러 이유로 선발 출전이 어려운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부상 때문에 풀타임 소화가 힘든 선수, 수비 대신 공격력이 좋은 선수, 팀 사정 때문에 출전 기회가 제한된 선수들이 대타 요원으로 대기한다. 게다가 기회가 많지도 않다. 타격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대타로 출전하는 많은 선수들은 경기 출전에 목말라있는 상태다. 때문에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하다. 대타 홈런이라도 나오면 대박이다. 그렇지만 대타 홈런이라는 건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 2005년에는 KIA 이재주가 5개의 대타홈런을 쳤지만 이는 정말 드문 케이스다.

때문에 롯데 외야수 임재철(39)이 날린 ‘불혹의 대타 홈런’은 더욱 특별하다. 임재철은 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 8회말 대타로 등장, 함덕주를 상대로 초구를 공략해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2-0에서 추가점을 내는 귀중한 홈런이었다. 올해 첫 타석에서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임재철은 우리나이로 올해 마흔, 불혹이다. 작년 LG에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고, 롯데는 재빨리 임재철을 영입했다. 기량과 리더십 모두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즌 초 임재철의 기회는 많지 않다. 앞선 4경기에서는 대주자로 1경기에만 잠시 출전했을 뿐이었다. 때문에 임재철은 “가만히 지켜만 보는 건 정말 힘들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내가 팀에 필요한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만 38세 360일에 친 이 홈런으로 임재철은 KBO 리그 역사상 18번째로 많은 나이에 홈런을 친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젊은 선수들이 먼저 기회를 받고 경기에 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임재철은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대타 홈런으로 보답을 받게 됐다.
이 홈런은 팀에도, 그리고 임재철에게도 특별했다. 경기 후 임재철은 “기회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왼손투수가 나와 감독님이 대타로 내보내셨고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타격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고참으로서 팀을 잘 이끌어 항상 최선을 다하는 팀을 만들겠다”며 최고참 선수다운 책임감도 보여줬다.
통산 2282타수를 기록 중인 임재철에게 2015년 4월 3일 첫 타석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살리기 위해 불혹의 임재철은 불평하지 않고 방망이에 날을 세웠고, 딱 한 번 주어진 기회를 홈런으로 멋지게 살렸다. 이 홈런은 준비된 선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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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