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결과는 이미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다. 18년 역사의 프로농구에서 역대 최악의 챔피언결정전이 진행되고 있다.
울산 모비스는 4일 오후 4시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원주 동부를 상대로 2014-2015시즌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이하 챔프전) 4차전을 치른다. 3연승을 달린 모비스가 4차전마저 잡는다면 역대 최초로 3년 연속 챔프전을 제패한 역사적 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런 명예도 더 큰 불명예에 가려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을 분위기다.
▲ 너무나 싱거운 챔프전

3차전까지 모비스는 완승을 거뒀다. 리카르도 라틀리프도 모자라 ‘시계형님’ 아이라 클라크까지 펄펄 날고 있다. 동부의 김주성과 박지현은 배터리가 방전됐다. 허웅, 두경민, 안재욱, 박병우 등 젊은 가드진이 모두 덤벼도 34살 양동근 한 명을 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전자랜드와의 4강전에서 모든 힘을 쓴 동부는 더 이상의 카드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설상가상 3차전에서 라틀리프와 충돌한 윤호영이 왼쪽 팔꿈치 인대가 파열됐다. 이보다 암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부가 설령 4차전을 잡더라도 과연 대세에 지장이 있을까.
역대 챔프전에서 4-0 우승은 두 번 있었다. 2006년 서장훈, 강혁, 이규섭, 김동욱, 이현호, 네이트 존슨, 올루미데 오예데지가 버틴 삼성은 양동근, 우지원, 김효범의 모비스를 4-0으로 이겼다. 경기결과는 일방적이었지만 내용은 박빙이었다. 단지 삼성의 기세가 너무나 뛰어났다.

공교롭게 모비스는 2013년 SK를 4-0으로 잡고 우승했다. 하지만 당시 시리즈는 2차전 막판에 나온 리카르도 라틀리프의 터치아웃이 결정적 오심으로 밝혀지면서 승부에 큰 영향을 줬다. 오심이 나오지 않았다면 시리즈가 4-0으로 싱겁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로농구 역대 챔프전 중 이렇게 긴장감이 없고 결과가 뻔하게 예상되는 시리즈는 단언컨대 이번이 처음이다.
▲ 경기시간 변경...역대 최저관중
올해 챔프전에는 경기 외적인 부정적 이슈가 훨씬 많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지난 27일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원래 오후 7시였던 2,4차전 경기시간을 공중파 중계를 위해 각각 오후 5시와 4시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7시 경기로 통보해 예매가 일부 진행된 상황이었다. 일부 팬들은 3차전 경기장에서 기습적으로 시위를 하며 반발했다. ‘소통 없는 독재정치, 김영기 총재는 물러나라!’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KBL은 돈을 주고 입장한 관중에게 물리력을 행사해 플래카드를 빼앗았다. 서로 간에 고성과 폭언이 오갔다. 그 과정에서 부상당한 팬이 응급실로 향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프로스포츠의 주인인 팬이 외려 천대를 당하는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발생했다.
경기시간이 당겨진 챔프 2차전이 열린 울산동천체육관에는 3028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올 시즌 울산에서 개최된 프로농구 홈경기 중 가장 적은 관중이었다. 187명의 무료 초청관중을 제외한 유료관중은 2841명으로 역대 챔프전 최저였다.

종전 챔프전 한 경기 최저관중은 1997년 원년리그 기아 대 나래 4차전의 2950명이었다. 하지만 원주 치악체육관의 관중수용규모가 3200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만석이었다. 18년 역사의 프로농구 챔프전에서 관중석이 이렇게 많이 비는 경우는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이런 현장의 분위기는 고스란히 지상파 중계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됐다. 처음 프로농구를 보는 팬들은 ‘프로농구는 챔프전인데도 저렇게 관중이 없나?’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이는 곧 KBL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연결돼 브랜드 가치까지 동반 하락할 수 있다. 모두 다 KBL이 자초한 일이다.
▲ 사상초유 기록원 이탈사태
음식도 맛이 없는 잔치에 축하해 줄 손님도 없다. 그러다 못해 아예 잔칫상을 뒤엎는 사태가 벌어졌다. 3차전에서 선수교체 타이밍을 두고 동부, 모비스와 기록석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선수교체 사인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유재학 감독이 기록석까지 가서 강하게 항의했다. 이에 감정이 상한 기록원이 돌연 자리를 이탈하면서 경기가 일시 중단됐다. 그나마 있던 잔칫상을 아예 엎어버린 셈이다.
기록원이 돌아오면서 경기는 속개됐다. 하지만 후폭풍은 가시지 않고 있다. 동부는 유재학 감독의 징계를 원하고 있다. 해당 기록원은 4차전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KBL은 근본적인 사태해결보다 사과에 급급하고 있다. KBL이 늘 보여줬던 문제해결 방식이다.
근본적인 책임은 KBL에 있었다. KBL이 정돈되지 않은 FIBA룰을 올 시즌 성급하게 도입하다보니 벌어진 사태였다. 예전부터 지적됐던 문제점이었지만 사건이 터진 후 처음으로 논의가 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단과 팬들이 떠안게 됐다.

프로야구는 이미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프로축구도 ‘박주영 컴백’ 등으로 어느 때보다 큰 호재를 맞고 있다. 그런데 프로농구는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광을 스스로 발로 차는 모양새다. 전자랜드와 LG의 선전으로 타올랐던 플레이오프의 열기도 이미 챔프전에서 차갑게 식었다.
대중은 프로농구에서 어느 팀이 우승하는지 전혀 관심조차 없다. 프로농구는 지금 출범 후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정작 KBL 관계자들은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4차전서 처음 챔프전 관전에 나서는 김영기 KBL 총재는 과연 팬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jasonseo34@osen.co.kr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