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이 사람을 아십니까] (2)최초 日 독립리그 출신 구단 매니저 이수범 씨
OSEN 고유라 기자
발행 2015.04.06 06: 00

야구장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조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코칭스태프, 혹은 프런트라고 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들이 조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매주 1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이야기를 OSEN이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야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준비가 돼 있던 사람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 1군 매니저 이수범 씨는 2012년부터 넥센에서 구단 영상편집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다 올해부터 매니저를 맡고 있다. 선수들이 이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숙소에 머무는 모든 일이 이 씨의 손을 거친다. 선수들이 야구를 하기 위한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것이 바로 매니저의 역할이다.

이 씨는 야구선수로 처음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교 4학년 옆 학교 감독에게 스카우트돼 야구를 시작한 이 씨는 학교의 에이스가 돼 매 경기 선발로 등판했다. 결국 6학년 때 팔꿈치에 문제가 생겨 중1 때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고1 때 한 번 더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는 송구 범위가 좁다는 이유로 프로 지명에 실패하고 대학교에 진학했으나 역시 프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2번의 팔꿈치 수술로 군면제를 받은 이 씨는 "남들 2년 군대 가는 것과 마찬가지니 2년만 투자해보자"는 생각으로 어디든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대학 감독으로부터 추천받은 곳이 바로 일본의 사회인 야구팀. 2009년 바다를 건넌 그는 5월 한 단계 위인 간사이 독립리그팀 고베 나인크루즈와 연습생으로 계약했고 6월 바로 정식선수가 돼 2년 반 동안 '눈물밥'을 먹으며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뛰었다.
설상가상 일본 대지진으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독립리그가 어려워졌다. 월급은 점점 줄었고 선술집에서 접시 닦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던 이 씨는 2011년 가을 NC 다이노스가 창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테스트는 불합격. 이 씨는 취업을 위해 일본어 공부를 하던 중 초등학교 후배 김민성의 추천으로 넥센의 가고시마 캠프 통역 아르바이트를 맡으면서 돌고 돌아 프로 구단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이 씨는 "어떻게든 야구단에 들어오고 싶었다. 야구가 좋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야구밖에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 꼭 있어야 했다. 가고시마에 가기 전 넥센에서 영상 편집 자리가 비어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때가 기회라고 생각해 잠도 안 자고 통역하며 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넥센과 인연을 맺은 이 씨는 이제 매니저로 야구를 대하고 있다. 선수 때와는 또 다르게 보이는 야구. 그는 "예전에는 그라운드에서 야구를 보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관중석에서 야구를 보는 느낌이다. 시야가 더 넓어졌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 팀 선수들을 돕는 것이 내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구단 매니저는 선수 출신들이 많지만 이 씨처럼 바다를 건널 정도로 굴곡진 야구 인생을 가진 이는 드물다. 야구를 하며 절박했고 진지했던 마음은 이제 팀을 위해 이어지고 있다. "우리 팀이 이기기 위해 제가 쓰레기통을 비워야 한다면 매일 쓰레기통을 비우고 매일 깨끗이 청소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각오. 외로웠던 선수에서 완벽주의자 매니저가 된 이수범 씨의 노력은 곧 지금까지 야구를 위해 흘린 땀방울의 연장선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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