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의 DNA가 남자부 전역으로 퍼지는 것일까. 최태웅(39) 현대캐피탈 신임 감독의 취임과 함께 남자부 사령탑 구도에 삼성화재 바람이 거세다. 삼성화재 출신들의 사령탑 진검승부도 차기 시즌 큰 화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대캐피탈은 2일 보도자료를 내고 “최태웅 신임감독을 선임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현대캐피탈은 “선수단에 변화와 혁신, 그리고 2015~2016시즌 승리공식을 만들어가는 초석을 준비하기 위해 이번 감독 선임을 결정했다. 패기와 전문성을 갖춘 최태웅 감독은 누구보다 현대캐피탈의 선수들의 컨디션과 장단점, 그리고 심리적 상태를 잘 알고 있다”라며 감독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배구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최태웅 감독이 현역에서 물러날지도 확정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인사가 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지도자 생활을 할 재목을 뽑혔지만 코치도 아닌, 곧바로 감독으로 승격한 것에 대해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실제 프로배구 현역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이 된 이는 최 감독이 처음이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하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낸 현대캐피탈의 초강수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최 감독은 현역 시절에도 ‘큰 형’으로서 선수들을 잘 이끈 경험이 있다. 젊은 나이에 주목하는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현대캐피탈이 리더십에 대한 큰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다. 카리스마는 물론 국내 최고 세터 출신의 명석한 두뇌에도 기대가 몰린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의 성공을 본 현대캐피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는 시각도 있다.
또 하나의 파격은 바로 삼성화재 출신 감독을 영입했다는 것이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배구계를 대표하는 라이벌이다. 정상을 놓고 숱하게 싸웠다. 아직도 ‘서로에게는 질 수 없다’라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 탓인지 양팀 사이의 자원 이동도 역사도 별로 없다. 박철우가 삼성화재로 이적한 것은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의 이동이었고 최태웅은 그 보상선수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었다. 양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트레이드와는 성격이 다르다.
2006~2007시즌 이후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해보지 못한 현대캐피탈의 초강수는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최 감독은 현역 시절의 마지막을 현대캐피탈에서 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삼성화재의 ‘DNA’가 더 짙게 남아있는 지도자다. 한창 때의 라이벌 관계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인사 쪽에 가깝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외형적인 자존심보다는 내부를 살폈다. 내실을 다져 다음 시즌에는 반드시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프로배구 남자부 사령탑 구보는 삼성화재의 색깔이 더 강해졌다. ‘원조’인 신치용 감독을 비롯, 신 감독의 지도를 받은 세 명의 제자들이 나란히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한국전력 시절 신 감독과 함께 했던 신영철(51) 한국전력 감독을 비롯, 지난 시즌 돌풍을 일으킨 김세진(41) OK저축은행 감독, 그리고 최 감독까지 신치용 감독 및 삼성화재와 직접적인 인연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런 현상은 삼성화재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 배구가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삼성화재는 한 때 화려한 멤버로 배구계를 주름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드래프트제에서는 예전처럼 걸출한 스타들을 금전으로 쓸어올 수가 없었고 우승을 거듭하면서 선수 수혈이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탄탄한 조직력 배구, 그리고 일사분란한 팀 문화로 프로배구 출범 이후 8번이나 정상에 섰다.
그런 삼성화재의 기본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각 팀 사정에 맞는 또 다른 배구가 정면으로 맞부딪힐지 관심이 모아진다. 신영철 감독은 기본기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거의 유사한 지도 스타일을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공격적인 배구에 대한 성향도 가지고 있다. 김세진 감독도 신 감독의 지도 철학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젊은 선수들에 대한 장악, 그리고 포지션에 국한하지 않는 열려 있는 사고로 결국 정상까지 내달렸다. 최태웅 감독 또한 '원팀'이라는 요소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되, 현대캐피탈만의 특색 있는 배구를 만들어가겠다는 출사표를 내밀었다. 삼성화재 출신의 서로 조금씩 다른 배구의 맞대결은 다음 시즌 순위표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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