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수는 562일을 기다렸다. 그 다음날 나온 선수는 560일을 기다렸다. 이들의 기다림을 합치면 무려 1122일이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성과의 열매는 더 달콤하다. 나란히 선발승을 신고한 SK의 윤희상(30) 백인식(28)이 그간의 울분을 털어냈다.
SK는 4일과 5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연승하며 올 시즌 첫 위닝시리즈를 완성했다. 표면적으로는 최정 박정권 이재원의 홈런포가 펑펑 터진 타선의 공이 컸다. 그러나 경기 초반 흐름을 만들어 준 두 선발투수의 공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4일 선발이었던 윤희상은 5⅔이닝 6피안타 2볼넷 4탈삼진 4실점(3자책점), 5일 선발이었던 백인식은 5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나란히 승리를 따냈다.
아직 몸 상태가 100%라고는 할 수 없어 투구수 제한이 걸려 있었던 두 선수였다. 90개 정도에서 끊어간다는 게 SK 벤치의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효율적인 피칭으로 5이닝 이상을 틀어막으며 팀 승리의 기틀을 놨다. 그것도 장타 위험이 높은 목동, 강타선을 자랑한다는 넥센을 상대로였다. 개막 이후 선발승이 없었던 SK에 찾아온 가뭄의 단비였다.

단순한 1승도 아니었다. 두 선수에게는 모두 의미가 큰 1승이었다. 악몽과도 같은 2014년의 기억을 날려버릴 수 있었던 한 판이었기 때문이다. 윤희상은 2012년 팀 내에서 유일하게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한 토종 우완 에이스다. 백인식은 2013년 혜성처럼 등장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5승을 챙기며 SK 선발진의 미래로 떠올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2014년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불운했다.
윤희상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지난해 최고의 ‘불운 아이콘’이었다. 타구에 두 차례나 맞아 시즌을 조기에 접었다. 백인식은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한 것에 적응하지 못했다. 여기에 부상까지 겹치며 역시 시즌을 일찍 마무리했다. 상승세를 이어가고자 했던 두 선수에게 찾아온 크나큰 시련이었다. 손가락에 큰 상처를 입은 윤희상은 “다시 공을 던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해야 했다. 백인식은 “2013년 활약이 반짝이었을 것”이라는 주위의 회의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더 큰 값어치가 있는 1승이었다. 타구에 대한 공포를 털어내고 마운드에 오른 윤희상, 주위의 쏟아지는 비판을 이겨내고 다시 공을 잡은 백인식이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경기 후 더 큰 목소리로 격려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두 선수의 활약상은 SK 선발 로테이션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김광현, 밴와트, 켈리가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세 명으로 한 시즌을 꾸려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1~3선발의 수준은 각 팀별로 큰 차이가 없다고 봤을 때, 시즌의 승패는 그 뒤를 받치는 선수들로부터 갈릴 수 있다. 여기에 윤희상은 원투펀치 선발의 성적을 낼 수 있음이 증명된 선수다. 백인식은 출발이 너무 좋은 편이다. 이제 감격투를 팀의 승리투로 이어가는 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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