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FA 모범생을 이야기할 때면 두산 홍성흔(38)을 꼽곤 한다.
홍성흔은 2009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4년 FA 계약을 체결, 2012시즌까지 475경기에 나서 타율 3할3푼 59홈런 321타점 OPS .899를 기록했다. 롯데 입단 첫 해였던 2009시즌에 타율 3할7푼1리를 찍더니 2010시즌에는 타율 3할5푼 26홈런 116타점 OPS 1.028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었다. 비록 포수 포지션을 잃고 지명타자로만 출장했으나, 타격에서 진화를 이루며 롯데에 대박을 안겼다. 2013시즌 친정팀 두산으로 돌아간 홍성흔은 지난 2년 동안 251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7리 35홈런 154타점 OPS .859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홍성흔 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어도, 누구보다 꾸준한 또 한 명의 FA 모범생이 있다. 내야수 정성훈(35)은 FA계약을 통해 2009시즌부터 LG 유니폼을 입었고, LG에 오면서 이전보다 뛰어난 선수가 됐다.

LG 입단 이전인 1999시즌부터 2008시즌까지 타율 2할8푼6리 OPS .793(출루율 0.375 장타율 .418)를 기록한 반면, 2009시즌부터 2014시즌까지는 타율 3할1리 OPS .828(출루율 0.390 장타율 0.438)을 찍었다. 타자에게 불리한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도 더 나은 타자가 된 것이다. 홈런수는 2003시즌부터 2008시즌까지 6년 동안 70개, LG 유니폼을 입은 2009시즌부터 2014시즌까지 6년 동안은 58개. 무지막지하게 넓은 잠실구장 외야만 아니었다면, 현대 시절보다 더 많은 홈런을 터뜨렸을 수도 있다.
정성훈은 이렇게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을 두고 “욕먹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욕심이 줄어들고 수읽기가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마음이 앞섰고, 크게 치는 것만 의식했는데 이제는 상대 배터리가 나를 어떻게 상대할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그리고 구단에서도 몸 관리를 잘 해주기 때문에 아프지 않고 경기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흔과 달리 정성훈의 가치는 수비에서도 빛난다. 정성훈은 수년 동안 무주공산이었던 LG 핫코너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정성훈이 LG 유니폼을 입은 2009시즌부터 LG 3루수 잔혹사에 마침표가 찍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 프랜차이즈에서 정성훈 만큼 공수를 겸장한 내야수는 거의 없었다.
우승해였던 1994시즌 3루수 한대화가 타율 2할9푼7리 10홈런 67타점으로 해결사 역할을 했으나, 성적만 놓고 비교하면 정성훈이 더 낫다. 한대화는 LG에서 타율 3할을 기록한 시즌이 없고, 두 자릿수 홈런 시즌도 1994시즌이 유일했다. 유격수 유지현 정도를 제외하면 정성훈이 LG 프랜차이즈 최고 내야수다.
정성훈의 또 다른 강점은 어느 자리든 활약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성훈은 2014시즌 도중 리드오프로 변신, 1번 타자로 171타석에 들어서 타율 3할5푼4리 출루율 4할4푼4리로 만점 활약을 했다. 2015시즌에는 대부분의 경기서 2번 타자로 나서고 있는데 7경기 타율 4할5푼 출루율 6할로 괴력을 발휘 중이다. 지난 5일 잠실 삼성전에선 3번 타자로 출장, 9회말 끝내기 안타 포함 5타수 2안타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수비에서도 팀의 주문에 확실하게 응답하고 있다. 2014시즌 1루수 변신에 성공하더니, 2015시즌에는 잭 한나한이 부상으로 뛰지 못하자 3루수로 돌아왔다. 3루수 유망주 양석환이 주전으로 출장할 경우에는, 1루수를 본다. 내야 양 코너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라인업에 힘을 불어넣는다. 정성훈은 이렇게 3루와 1루를 모두 소화하는 것과 관련해 “감독님께서 주신 역할이다. 역할에 맞게 내 할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특별히 어렵지는 않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리더십도 뛰어나다. 정성훈은 내야진의 맏형으로서 후배들을 독려하곤 한다. 스프링캠프든 정규시즌이든 내야 수비 훈련 때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이도 정성훈이다. 지난겨울 비시즌에도 정성훈은 매일 잠실구장을 찾았고, 오지환 또한 정성훈을 따라 자율훈련을 했다. 당시 오지환은 “정성훈 선배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팀 내야수들이 많이 배우고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성훈은 2012년 11월 LG와 두 번째 FA 계약을 맺었다. 계약규모는 4년 총액 34억원. 정성훈의 기량과 최근 FA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낮은 액수다. 사실 정성훈은 당시 더 좋은 조건을 택할 수도 있었다. KIA 한화 NC 등이 정성훈 영입을 위해 40, 50억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정성훈도 계약을 체결하고 난 후 “사실 정말 고민이 많았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돈을 많이 받게 될 거라는 전망이 들리면서 ‘내가 그 정도를 받아도 되나’하는 생각도 했다”고 당시 심정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성훈은 돈보다는 LG와의 의리를 택했다. LG에서 이루지 못했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다시 도전해보기로 다짐했었다. 정성훈은 “LG를 떠나면 도망자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성적만 난다면 어느 팀에서 뛰는 것보다 값진 환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LG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LG는 2013시즌부터 2년 연속 가을잔치 티켓을 차지했고, 정성훈도 2013시즌부터 지금까지 타율 3할2푼5리 OPS .890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한편 지난 5일 끝내기 안타는 정성훈에게 있어 11년 만의 기록이었다. KBO에 따르면 정성훈은 현대 시절이었던 2004년 7월 25일 한화전 이후 끝내기 안타가 없었다. 정성훈 또한 최근 끝내기 안타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정말 오랜만에 끝내기 안타를 친 것 같다. LG에 오고 나서 끝내기 희생플라이는 있었는데 끝내기 안타는 했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