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 도입 움직임, 부작용 속출 우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4.06 13: 10

프로야구계에 에이전트 제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된다. 정부와 여당 등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변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선수 권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국내 프로스포츠계의 에이전트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라면서 “이미 문화체육관광부가 여론을 수렴하며 구체적인 방안 만들기에 들어갔다. 여당에서도 호의적인 인사들이 있고 산업계에서도 새 성장 동력으로 주목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르면 7일 시작되는 4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굵직한 정치권 현안이 있는 만큼 얼마나 논의가 진척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와 여당에서 제도적으로 추진할 경우 문호가 개방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현재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 중에서 에이전트 제도가 인정되고 있는 종목은 축구뿐이다. 나머지 야구와 농구, 그리고 배구는 국내 선수의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농구와 배구는 상대적으로 판이 작고 선수들의 수도 적다. 결국 야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현재도 KBO 야구규약에는 대리인 제도에 대한 조항이 있다. 제 5장 선수계약의 제30조 대면계약 조항을 보면 “구단과 선수가 선수계약을 체결할 때는 해당구단과 해당선수가 직접 계약을 체결함을 원칙으로 한다”라면서도 “선수가 대리인을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법 소정의 변호사만을 대리인으로 하여야 한다”라고 자격을 한정하고 있다.
이는 2001년 10월 31일 개정된 것으로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리인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불공쟁거래행위라며 KBO에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KBO는 당시 부칙으로 “대리인 제도의 시행일은 부칙에 따로 정한다”라고 명시했고 아직까지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KBO 측은 “적절한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시행한다”라는 생각이지만 구단들의 반대 속에 14년가량 현행 체제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에이전트 산업을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예전보다 프로스포츠의 규모가 커졌고 그만큼 많은 돈이 돌고 있다. 하나의 스포츠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3년 발표한 ‘스포츠산업 중장기 발전계획(2014~2018년)’의 골자에도 에이전트제가 포함되어 있으며 지속적으로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 또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의지가 강해 에이전트제 도입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현재 분위기다.
에이전트제가 도입되면 선수들의 권익이 신장될 수 있다. 운동만 아는 선수들이 많아 금전적인 부분에 둔한 경우도 있고 자신의 가치를 잘 포장하고 싶어도 능력이 부족해 그러지 못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풍부한 데이터를 앞세운 각 구단의 논리에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를 전담으로 대리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의 에이전트가 생긴다면 선수들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으며 전문적인 협상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선수와 구단 사이의 험악한 말이 오고갈 이유도 없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에이전트 도입에는 찬성하지만 시기상조라는 논리는 유효하다. 우선 각 구단들은 가뜩이나 높아지고 있는 선수들의 몸값이 에이전트제 도입으로 더 치솟는 것을 우려한다. 지금도 모그룹의 지원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프로야구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균형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스타 선수들만 혜택을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미국 스포츠계의 경우는 보통 선수 계약금이나 연봉의 10% 이내를 보수로 받는다. 현재 KBO 규약으로는 “대리인으로 지정된 변호사는 2명 이상의 선수계약에 관여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봉 규모가 작은 선수보다는 일부 특급 스타들만 에이전트 제도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정말 보호가 필요한 연봉 5000만 원 이하 선수들을 신경 쓰는 에이전트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업계에서는 대리인의 자격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 현역 에이전트는 “KBO에서 얼마나 의지를 보일지는 의문”이라면서 “변호사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 하지만 제한을 완전히 풀 경우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들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손해만 끼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이 혼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변호사들의 최근 집단 움직임을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전직 선수협 임원을 지낸 한 선수는 “지금까지 선수들의 권익 신장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변호사들이 막상 돈이 된다니까 달려들고 있다. 야구 산업에 대한 이해와 진정성이 부족한 자들”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해 12월 KBO의 에이전트제 도입을 압박하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KBO를 신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막상 정부에서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구체적인 시행령을 마련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