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11년 제대를 했으니까, 아마 2012년 초의 일이었을 거에요”
질문에 과거를 떠올리던 백인식(28, SK)의 기억은 2012년 초 어느 시점을 향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더듬은 백인식은 “그 때 지금은 KIA로 이적한 (김)준이 형과 재활군에 있었다. 둘 다 살이 좀 찐 상황이었는데 정말 열심히 뺐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군 복무 이후 자리를 잡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던 백인식을 눈여겨본 이가 있었다. 바로 지금은 SK 감독이 된 김용희 당시 2군 감독이었다.
백인식의 성실함, 그리고 가능성을 눈여겨 본 김용희 감독은 그를 중용했다. 장기적인 선발 요원으로 낙점하고 전략적으로 기회를 주며 키웠다. 프로입단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백인식 스스로도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백인식은 “글쎄다. 열심히 살을 빼는 모습을 보고 좋게 평가해주신 것이 아닐까”라고 웃었지만 결국 백인식은 2군에서의 수업을 거쳐 2013년 SK 마운드 최고의 신데렐라가 됐다.

스스로를 낮추는 데 익숙한 백인식이지만 그는 가진 것이 적지 않은 투수다. 사이드암으로 빠른 공을 던진다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보통 옆구리 계통 투수들이 잘 던지는 커브보다는 체인지업을 더 잘 던진다. 잠수함 선발투수들이 사라져가고 이유 중 하나가 좌타자 승부에 약점을 보인다는 것인데 백인식의 체인지업은 그런 약점을 상당 부분 상쇄해주는 무기다. 제구만 잡히면 빠른 승부도 가능한 투수가 백인식이다.
그런 백인식은 지난해 풍파를 겪었다.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한 시즌을 사실상 그냥 날렸다. 주위의 쏟아지는 비난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그 때 백인식을 일으켜준 이 중 하나가 김 감독이었다. 감독으로 부임한 후 백인식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제 기량을 찾는다면 선발진의 ‘감초’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인식은 구단과 김 감독의 관심 속에 야쿠르트 마무리캠프, 전지훈련을 거치며 웃음을 되찾았다. 치열한 5선발 경쟁에서 김 감독의 낙점을 받아 처음으로 시즌을 선발로 시작했다.
터널의 끝은 조금씩 보이고 있다. 백인식은 5일 목동 넥센전에서 5이닝 동안 2실점으로 버티며 올 시즌 첫 등판에서 첫 승리를 따냈다. 장타 위험이 높은 목동에서 넥센 강타선을 상대로 호투했다고 볼 수 있었다. 백인식은 “사실 실투가 적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 체인지업이 잘 먹히지 않았다”라고 경기를 꼼꼼하게 돌아보면서 “다음 상대가 NC가 될 것 같은데 NC에는 힘 있는 좌타자들이 많다. 잘못 걸리면 그냥 넘어간다. 이 점을 반드시 보완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백인식은 “사실 넥센전은 감기 기운이 있어 진통제를 먹고 뛰었다”고 고백했다. 그 이유를 묻자 백인식은 “긴장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믿어주신 감독님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웃었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털어버려서일까. 백인식은 “(박)계현이가 연봉 5000만 원이 되면 감독님께 밥을 사드린다고 했는데, 나도 선물을 사드리겠다”고 씩 웃으며 다음 경기 대비에 들어갔다. 물론 김 감독이 바라는 최고의 선물은 백인식이 씩씩하게 마운드를 지키는 그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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