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지 말고 코미디언 시키면 안 될까".
한화 외국인 타자 나이저 모건(35)은 야구를 할 때 나오는 또 다른 자아 '토니 플러시'로 유명하다. 토니를 의미하는 'T 세리머니'는 모건의 트레이드마크. 그런데 문제는 T 세리머니를 너무 남발한다는 데 있다. 지난 8일 대전 LG전에서는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2회 안타를 치고 나간 모건은 후속 정범모 타석에서 초구에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 당했다. 이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덕아웃으로 들어온 모건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방송 중계 카메라를 응시하며 또 T 세레머니를 했다. 모건의 이 모습을 덕아웃 끝 편에서 김성근 감독이 지켜보고 있었다.

김 감독 눈에선 레이저가 발사되고 있었다. 도루를 하다 아웃당한 선수가 세리머니를 한다는 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이튿날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걔는 시도 때도 없이 웃더라. 삼진당해도 웃는다. 야구하지 말고 코미디언을 시키면 안 될까. 인물도 잘 생겼고, 코미디언 하면 되겠네"라며 껄껄 웃었다.
모건의 T 세리머니는 이처럼 상황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 보통 클러치 상황에서 결정타를 치거나 승리가 확정됐을 때 세리머니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모건은 팀이 크게 지고 있거나 몸에 맞는 볼을 얻어도 1루에 나가 T 세리머니를 한다. 지난 9일 LG전에서는 수비에서 3루 주자의 홈 득점을 막고서는 양 팔을 일자로 벌려 온몸으로 T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걱정은 모건의 T 세리머니가 혹시라도 상대 팀에게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김 감독은 "상대 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가 문제"라면서도 "걔는 자기가 혼자 좋아서 그러는 것이다. 개막전에서 2루타를 치고 뭐하나 싶었다. 2루에서 (손가락으로 직접 T자를 그리며) 이러고 있더라"고 당황스러웠던 T 세리머니의 첫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 감독은 T 세리머니가 상대 팀에서 불쾌하게만 생각하지 않으면 하지 못하게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김 감독은 "야구를 잘해야지"라며 "모건이 외야로 라이너 히트가 없다. 개막전에서 펜스를 맞힌 것 말고는 전부 플라이다. 적응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건은 개막 9경기 31타수 9안타 타율 2할9푼 5타점을 기록 중이다. 4안타를 몰아친 개막전을 제외한 8경기서는 타율 1할9푼2리로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모건의 T 세리머니는 이미 선수단 전체에 강하게 퍼졌다. 시즌 초반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마음고생한 김회성을 따뜻하게 격려하며 힘을 실어준 것도 모건이었다. 김회성은 "스트레스 받는 것을 봤는지 모건이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해 주더라"며 "모건과 말은 통하지 않는다. T 세리머니만 하면 된다"고 고마워했다. T 세리머니 없는 모건은 모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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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