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첫 걸음을 뗐다. 기뻐할 수도, 칭찬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첫 걸음’에 불과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조범현 kt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첫 승의 흥분은 그날로 끝이다. 조 감독의 시선은 이제 다시 앞을 향하고 있다.
kt는 11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감격적인 1군 무대 첫 승을 거뒀다. 개막 후 11번을 싸워 내리 졌던 kt는 이날 선발 크리스 옥스프링의 7이닝 무실점 역투, 그리고 기회를 십분 살린 타선의 집중력을 앞세워 6-4로 이겼다. 9회 4실점을 하며 마지막까지 진땀나는 승부가 이어졌지만 야구의 신은 kt의 손을 들어줬다. 경기 후 선수들은 “이겼다!”라는 소리를 지르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어느 정도 털어냈다.
경기 후 조 감독도 감회가 새로운 표정이었다. 2009년 KIA를 이끌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감독이지만 첫 승이 주는 후련함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도 2011년 10월 4일 SK전 이후 1285일 만에 맛보는 1군 승리였다. 경기 후 담담한 표정으로 취재진과 만난 조 감독은 “개인적으로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어렵사리 미소를 지어보였다.

선수들도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조 감독도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2주일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승리에 모든 이들이 힘들어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조 감독은 “선수들이 ‘이겨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다. 편안하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라고 했지만 조바심이 집중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도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평정심을 찾기 위해 스스로도 경기 전 숙소 인근 산에 올랐을 정도다.
그래서 첫 승은 의미가 있다. 이제는 ‘첫 승’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좀 더 정상적인 야구가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자신감 향상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조 감독의 감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이 태산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약한 전력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인내와 시간을 가지고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 번의 승리가 이런 걱정을 모두 날려버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감상을 접은 조 감독은 “첫 승에 대한 부분은 크지만 올 시즌, 내년, 그리고 내후년을 생각한 과제가 많다. 중장기적인 비전을 잘 세워야 한다. 시스템적인 부분을 잘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한 뒤 “할 일이 많을 것 같다”면서 다시 첫 승 이전의 원래 심정으로 돌아왔다. 실제 kt의 전력은 압도적인 꼴찌 후보다. 2013년 1군에 뛰어들었던 NC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11연패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조 감독이 긴장을 풀지 않는 이유다.
조 감독의 말대로 신생팀은 체계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든든한 기반이 있다면 향후 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kt는 아직 그 체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현장에서의 치열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프런트의 노력도 비중이 크다. 첫 승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낸 kt지만 이제 막 다시 출발점에 섰다고도 볼 수 있다. 감상에 젖지 않은 조 감독의 시선은 다시 미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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