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루타! 3루타!".
한화 베테랑 유격수 권용관(39)이 지난 14일 대전 삼성전에서 8회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3루타!'를 외쳤다. 사이클링히트까지 3루타 하나를 남긴 상황, 권용관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흘려보낸 뒤 2구에 기습적으로 번트를 시도했다. 3루 파울 라인 밖으로 벗어났고, 결국 3구 만에 헛스윙 삼진 당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권용관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야구에 임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9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한 그는 3회 좌월 솔로 홈런, 5회 좌전 안타, 7회 좌중월 2루타를 차례로 터뜨리며 사이클링 히트까지 3루타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스스로 기습번트를 댔다. 생애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이클링 히트 기회였지만, 5-3 살얼음 리드 상황에서 베테랑 권용관은 개인보다 팀을 먼저 생각했다.

경기 후 권용관은 "사이클링 히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었겠냐만 팀에 1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3루 수비가 뒤에 있었고, 내가 살아나가 1점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번트를 댔다"며 "사이클링 히트를 하지 못했지만 괜찮다. 내가 그런 기록을 할 사람은 아니다"고 자신을 낮췄다.
권용관은 이날 전까지 시즌 12경기에서 30타수 6안타 타율 2할에 그쳤다. 김성근 감독의 굳건한 믿음 아래 주전 유격수로 시작했지만 타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아쉬운 플레이가 몇 차례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강경학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주며 벤치 대기, 설자리가 좁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날 첫 타석부터 장쾌한 홈런을 뿜어냈고, 수비에서도 5회 무사 1루에서 박석민의 강습 타구를 막고 넘어진 뒤 누워서 2루 송구로 포스아웃시키는 감각적인 플레이도 선보였다. 그는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타구가 너무 빨라 감으로 잡았다. 한 명이라도 잡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권용관은 "감독님이 나를 데려오셨고, 팀에 젊은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그러다 보니 좋은 스윙이 안 나오고, 나 자신도 위축되는 것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시즌 초반에는 목통증으로 훈련 없이 바로 경기에 임하다 보니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선발에서 빠진 롯데와 주말 경기를 통해 한 템포 쉬어갔다. 그는 "사직 3연전을 통해 휴식을 가지며 좋은 생각들을 많이 했다. 운 좋게 타격 밸런스도 조금 맞아갔다. 힘이 떨어져 있었는데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며 "진짜 처음으로 편하게 잘 수 있겠다"고 활짝 웃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 심했던 불혹의 노장은 모처럼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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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