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기 위해 돌아왔나 싶다".
한화 김성근(73) 감독에게 지난 며칠은 잠을 이룰 수 없는 불면의 나날이었다. 지난 12일 사직 롯데전에서 일어난 빈볼 사태로 모든 비난의 화살은 김 감독에게 쏠렸다. KBO는 이례적으로 지난 15일 상벌위원회를 통해 빈볼의 책임을 물어 제재금 300만원을 김 감독에게 부과했다. 이날 삼성과 대전 홈경기를 앞두고 감독실에서 만난 김 감독은 "4년 만에 돌아온 프로야구에서 변화를 주고 싶었다. 야구를 위해 다시 프로에 왔는데 이러기 위해 돌아왔나 싶다"고 그간의 격정을 토로했다.
▲ 빈볼 사태, 모든 책임은 감독

지난 12일 사직 롯데전에서 불거진 빈볼 사태로 한화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빈볼을 던진 주체를 놓고 진실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롯데 측에서 강하게 반응했고, 한화도 이에 대해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주장 김태균을 중심으로 몇몇 선수들이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김성근 감독은 "선수·구단에 일절 대응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감독인 내가 진다"고 했다.
김 감독은 롯데 이종운 감독의 빈볼 사태와 관련한 강경한 코멘트에 대해 "감독 초년생이다. 선배의 입장에서 야구 전체를 봤을 때 맞대응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경기장 안에서 한 말이었다면 나도 대응했겠지만 경기장 밖에서 한 말이라서 조용히 있었다. 누가 잘못 됐다는 게 아니라 야구 전체를 볼 때는 선배의 위치를 생각해야 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빈볼을 던져 5경기 출장정지를 당한 이동걸도 엔트리 제외 없이 1군 선수단 함께 움직인다. 김 감독은 "이동걸과 선수들이 전부 나에게 사과하러 왔더라. 걱정하지 말라, 괜찮다고 말해줬다. 내가 (코너에) 몰리니까 김태균이는 자기가 해결하려고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말렸다. 선수들을 도마 위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 KBO 징계에 대한 유감
김 감독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KBO의 징계였다. KBO는 빈볼을 던진 이동걸뿐만 아니라 김성근 감독과 한화 구단에게도 각각 300만원과 500만원 제재금을 부과했다. 특히 김성근 감도에게는 선수단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었다. 감독이 빈볼 문제로 징계를 받는 건 매우 이례적인 조치. 김 감독은 KBO 징계에 대해서도 유감을 나타냈다.
김 감독은 "여태까지 KBO 상벌위원회가 납득된 게 하나도 없었다. LG와 SK에서 패널티를 받을 때도 그랬다"며 "이번에도 심판에게 '왜 퇴장이냐'고 물어보고 '컨트롤이 없는 투수'라고 말한 게 전부다. 그런데 심판의 말투에 속이 상했다. 상벌위원회 규약을 보면 막말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난 막말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어 김 감독은 "4년 만에 프로에 돌아왔는데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제약이 너무 많아졌다. 감독-코치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 많다"고 답답해했다. 야구 내적인 문제를 놓고 KBO가 제약을 거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김 감독은 "KBO 규약이 그렇다면 따라야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 야구계 변화를 이끌고 싶은데…
김 감독은 "프로야구는 앞으로 달리고 있는데 왜 자꾸 끌어내리려 하는지 모르겠다. 야구를 위해 프로에 돌아왔다. 지난 3년간 바깥에서 볼 때 야구가 이상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프로에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변화가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러기 위해 돌아왔나 싶다. 야구에 대한 열의가 식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감독은 "빈볼을 맞으면 아프다. 하지만 정신적인 빈볼도 아프다"며 "나도 할 말이 많다. 나 개인과 팀을 위해서는 말을 하고 싶지만 야구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한화 팀 전체가 상처를 받은 것이 가슴 아프다. 한화 팬들이 등을 돌리면 가슴 아픈 일이다"며 "앞으로 이런 사태가 또 다시 나오면 내가 책임지겠다. 내일이라도 옷을 벗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건강도 많이 악화됐다. 김 감독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병원에서 링거를 맞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니 위궤양이 생겼다. 경기가 워낙 타이트하게 흘러가니 더욱 그렇다. 어제(14일)는 한화에 와서 감독실 소파에 드러누운 것도 처음이다"며 "선수들이 버티고 있는데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김 감독의 코끝은 어느새 인가 빨갛게 달아 올라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해보였다.
waw@osen.co.kr
대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