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가 불의의 부상으로 딱 1이닝만을 던진 채 내려갔다. 팀 마운드로서는 모든 구상이 다 꼬여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SK에는 선발급 소방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채병룡(33, SK)의 혼신의 6이닝 퍼펙트 투구가 팀을 살렸다.
SK는 16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10-0으로 이겼다. 전날 4-3으로 앞서고 있던 8회 역전을 허용하며 아쉬움을 곱씹었던 SK는 이날 투·타가 고르게 활약하며 패배를 설욕하고 분위기를 전환했다. 1회부터 4점을 내며 힘을 낸 타선도 수훈을 세웠지만 역시 이날의 영웅은 채병룡이었다. 팀의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혼신의 투구로 넥센 타선을 틀어막았다.
이날 SK의 선발은 트래비스 밴와트였다. 그러나 딱 1이닝을 던지고 내려갔다. 부상 때문이었다. 1회 2사 1루에서 박병호의 강습타구에 오른발 복사뼈를 강타 당했다. 맞는 순간 더 이상의 경기 진행은 어려울 것임을 직감할 수 있는 부상이었다. 다행히 정밀검진 결과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SK 불펜은 비상이 걸렸다. 이제 1회를 했을 뿐이었고 앞으로 8이닝이 남아있었다.

그 때 불펜에서 분주하게 몸을 풀던 선수가 있었다. 바로 채병룡이었다. 올 시즌 고효준 박종훈과 함께 SK의 롱릴리프로 활약 중인 채병룡은 2회 곧바로 마운드에 올랐다. 몸을 풀 시간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 최대한 시간만 끌어줘도 성공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등판이었다. 그러나 채병룡은 기대 이상의 역투를 펼치며 넥센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7회까지 6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아냈고 단 한 타자에게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는 기가 막힌 투구로 팀 승리에 발판을 놨다. 승리투수의 영광은 지극히도 당연했다.
몸이 덜 풀린 상황이었지만 갈수록 힘을 냈다. 최고 구속은 141㎞ 정도였지만 워낙 제구가 잘 돼 넥센 타자들이 쉽게 방망이를 내지 못했다. 여기에 슬라이더, 커터를 적절하게 섞으며 타이밍까지 뺏는 통에 넥센 타자들은 철저히 침묵해야 했다. 컨디션도 좋아 보였지만 노련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투구였다.
채병룡은 SK 왕조를 이끈 주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02년 SK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래 67승61패18세이브10홀드를 기록했다. 선발과 중간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활약으로 SK 마운드의 대들보 중 하나로 우뚝 섰다. 지난해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며 8승을 거뒀던 채병룡은 올 시즌 중간에서 힘을 내고 있다. 이날 경기 전까지 5경기에서 1승1홀드 평균자책점 3.18로 좋은 투구를 보였던 채병룡은 이날 맹활약으로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빛냈다.
김용희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채병룡이 마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6선발 체제가 돌아갈 때는 선발 후보로, 그렇지 않을 때는 중간에서 전천후로 활용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물론 보직 자체는 쉽지 않다. 필승조와는 달리 언제 마운드에 오를지 알 수 없는 보직이라 컨디션 관리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그와 관계없이 묵묵히 마운드에서 자기 몫을 하는 채병룡의 활약 덕에 SK 마운드도 힘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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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