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위는 정상이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낫다고 말한다. 스스로의 꾸준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성적은 생각보다 나지 않는다. SK 에이스 김광현(27)의 이야기다. 어쩌면 김광현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광현은 올 시즌 첫 4경기에서 3승1패를 기록 중이다. 18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따냄에 따라 다승부문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승리라는 가장 중요한 명제만을 놓고 본다면 쾌조의 출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세부 지표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 냉정히 이야기해, 김광현에 대한 현재 팬들의 시선은 ‘3승’보다 ‘5.40’이라는 평균자책점에 더 쏠려 있다. 지난해 극심한 타고투저 양상에서도 3.42라는 리그 2위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김광현이기에 더 그렇다.
세부지표를 보면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좋아진 면도 있다. 김광현은 스스로 “지난해 이맘때에 비하면 구위가 더 좋은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김광현의 공을 받고 있는 포수 정상호 또한 18일 경기 후 “구위에는 문제가 없다. 경기를 치르면서 더 좋아지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김용희 SK 감독은 “제구가 약간 문제인데 구위는 나쁘지 않다. 볼 배합의 문제도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실제 김광현의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11.50개로 한현희(넥센, 12.32개)에 이어 리그 2위다. 지난해 수치(7.51)보다도 훨씬 높다. 9이닝당 볼넷 개수도 지난해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스트라이크 비율은 지난해 61.5%에서 63.9%로 높아졌다. 피안타율도 2할4푼1로 지난해(.274)에 비하면 훨씬 좋다. 여전히 타자들은 김광현의 공을 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자료들로 모자람이 없다.
이런 세부지표만 보면 김광현의 성적은 지난해보다 나아지거나 최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평균자책점, 이닝소화 등의 지표가 하락한 것이 역설적이다. 김광현은 올 시즌 아직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가 없다. 시즌 초반 김용희 감독의 투구수 관리도 고려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초반 투구수가 적지 않다. 득점권에서 약해진 것도 눈에 띈다. 김광현의 올해 득점권 피안타율은 2할8푼6리로 지난해(.229)보다 올라갔다. 잘 던지고도 마무리를 못 짓는 셈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너무 완벽하게 던지려는 강박관념이 김광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희 감독은 18일 경기를 앞두고 김광현의 초반 투구에 대해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은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빠른 공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타자들을 이겨낼 수 있는 선수다. 그러나 지나치게 안 맞으려고 하니까 제구가 흔들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라고 안쓰러워했다.
정상호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정상호는 “간간히 나오는 실투가 아쉬울 뿐, 구위는 경기마다 계속 좋아지고 있다”라면서도 “안 맞으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마운드에서 ‘이 위기를 이겨내야 겠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힘이 들어가면 제구가 흔들리기 마련이고 실투도 나온다. 18일 LG전 3회 1사 3루에서 나온 폭투도 단적인 예다. 김광현은 누구보다 그 폭투를 안타까워했다.
물론 김광현이 심리적인 압박감을 받으며 던지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팬들의 기대치는 한껏 높아져 있다. 퀄리티스타트 정도로 김광현에게 “잘 던졌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 다른 투수들과는 다른 잣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압박감과 부담감, 잘해야 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화려하게 재기를 하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 관련 풍파도 겪었다.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그런 주위의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없다. 김광현이 강해진 만큼, 보이지 않는 적들의 무게도 늘어났다.
주위에서 도와줄 수는 없는 문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에이스의 숙명이고, 또 스스로 이겨내야 할 문제다. 다행히 김광현은 이미 해답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는 데 기대가 걸린다. 구위는 여전히 최상급이다. 경험도 풍부하다. 주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지금까지는 그 해답을 답안지에 써내려갈 때 너무 고민이 많고 부담이 커 마킹을 잘못한 정도다. 그 압박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김광현의 진짜 시즌도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김광현은 이제 네 경기를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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