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서 판정권을 갖고 있는 건 심판 뿐이다. 선수가 판정에 대한 생각을 가슴 속에 품을 수야 있겠지만, 스스로 판정을 내리고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선수는 반드시 심판의 최종판정을 기다린 후 차후 플레이를 진행해야만 한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7년 8월 23일 대구구장에서 일어난 포수의 실책은 지금도 계속해서 회자된다. 삼성 라이온즈와 쌍방울 레이더스가 만났는데, 삼성은 9회초까지 4-1로 앞섰다. 쌍방울은 마지막 공격에서 2사 1,2루 기회를 잡았지만 대타 장재중이 김태한의 원바운드 변화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장재중은 힘없이 더그아웃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김영진은 승리했다는 안도감에 관중석으로 공을 던졌다. 그 순간 삼성 백인천 감독은 1루 쪽으로 황급하게 손가락을 가리켰지만 이미 공은 김영진의 손을 떠났다. 당시 심판들도 경기 종료를 선언했고 그대로 경기는 끝나나 싶었다.

그러나 쌍방울 김성근 감독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2스트라이크 이후 원바운드 공에 헛스윙을 하면 기록은 삼진이지만 낫아웃 상황으로 1루에 송구를 해야 한다. 이 조항을 들어 김 감독은 거세게 항의를 했고 4심 합의끝에 장재중은 투베이스 진루권을 얻었다. 2루에 있던 주자는 홈인, 1루 주자는 3루까지 갔다. 곧이어 최태원의 동점 적시타가 터졌고 그 경기는 쌍방울이 6-4로 잡았다. 지금도 회자되는 '김영진 낫아웃 사건'이다.
일구이무, 공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 김 감독의 집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역전극이다. 그런데 이번엔 김 감독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에서 포수의 결정적인 본헤드플레이가 나왔다.
한화는 8승 8패, 승률 5할에서 숙적 LG 트윈스를 만났다. 한화는 0-2로 끌려가던 5회말 2사 만루 위기에 봉착했다. 선발 쉐인 유먼은 이진영을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를 펼치다가 볼넷을 내줬다. 유먼의 6구는 바깥쪽 낮은 곳에 꽂혔는데, 한화 포수 정범모는 스트라이크를 확신하고 1루수 김태균에게 공을 던지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문제는 우효동 구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는 점. 이진영은 볼넷이었고 인플레이 상황이었다. 정범모는 유유히 홈플레이트를 비웠고, 2루에 있던 정성훈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3루를 거쳐 홈까지 파고들었다. 뒤늦게 눈치를 챈 유먼은 홈 커버를 들어갔지만 이미 정성훈이 홈을 찍었다.
정범모는 스스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하고 홈플레이트를 떠나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김 감독은 항의를 하기 위해 나왔지만 별 수가 없었다. 그저 정범모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범모는 7회 허도환으로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18년 전 상대 포수의 방심을 놓치지 않았던 김 감독, 이번에는 믿었던 정범모가 본헤드플레이를 저지른 건 아이러니하다. 한화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0-10으로 참패를 당하고 다시 5할 승률이 무너졌다. 김 감독은 경기 후 "5회 공 하나가 승부를 갈랐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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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