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타점 고지’ 이재원, 압박감 즐기는 괴물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4.21 21: 59

“9회, 끝내기 상황이 됐다고 치죠.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 중 누가 가장 긴장할까요?”
21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경기를 앞두고 김용희 SK 감독은 득점권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취재진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졌다. 취재진들의 대답도 분분한 가운데 김 감독은 빙그레 웃으며 “아무래도 공을 던지는 투수와 받는 포수, 그리고 타석에 서 있는 타자가 가장 긴장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바로 대기타석에 서 있는 선수가 가장 긴장한다”라고 의외의 답을 내놨다.
웬만큼 간이 큰 선수가 아니고서야 그 상황에서 엄청난 압박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부담이 오는 상황을 즐기기는 쉽지 않다. 치면 영웅이지만 못 치면 역적이 된다. ‘차라리 앞에서 끝내줬으면’ 하는 마음가짐이 생기기 마련이다. 꼭 끝내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주자가 있는 득점권 상황에서도 배짱이 없으면 좋은 타격을 하기 힘들다. 그런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어야 ‘클러치 히터’가 된다. 올 시즌 엄청난 득점권 괴물로 변신한 ‘미스터 클러치’ 이재원(27, SK)이 딱 그런 선수다.

이재원은 이날 경기 전까지 6할1푼1리의 엄청난 득점권 타율을 기록 중이다. 통계만 놓고 볼 때, 1루가 비어 있다면 상대 마운드로서는 이재원과 승부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 이재원은 21일 경기에서도 또 한 번 집중력을 발휘했다. 5-2로 앞선 6회 추가점을 내는 데 기여하며 다시 타점 수확에 나섰다.
SK는 6회 1사 후 박재상, 그리고 2사 후 브라운과 박정권이 볼넷을 얻어 만루를 만든 상황이었다. 대기타석에 서 있는 이재원으로서는 앞선 타석에서 박정권이 해결을 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만루 기회를 놓치면 팀으로서는 김이 팍 새기 마련이다. 이미 4회 2사 1,3루 득점권 기회를 놓친 기억이 있는 이재원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kt 벤치는 이재원에게 초구를 던진 황덕균을 빼고 김기표를 마운드에 투입시킨 상황이었다. 타석 도중에 투수까지 바뀌었다.
그러나 득점권 상황만 오면 강해지는 이재원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3B을 만든 뒤 한 개의 스트라이크를 보내고 5구에 적극적인 스윙을 했다. 파울이었다. 이제는 투수도, 타자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이재원은 김기표의 6구를 정확히 받아쳐 좌익수 키를 넘기는 적시 2루타를 쳐냈다. 2사 만루의 풀카운트라 1루 주자 박정권까지 일찍 스타트를 끊은 덕에 세 명의 주자가 모두 들어왔다. 8-2. 객관적인 전력차를 고려하면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는 한 방이었다.
김용희 감독도 경기 전 이재원의 득점권 타율에 대해 칭찬하면서 이재원의 타격 훈련을 유심히 살펴볼 것을 권유했다. 김 감독은 “기본적으로 이재원은 눈이 좋다. 선구안이 좋아야 타격도 잘 되는 것”이라면서 “연습 자체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한다. 보통 저런 유형의 선수들이라면 연습에서도 잡아당기려고 하는데 이재원은 그렇지 않다. 거의 대부분 밀어치기다. 영리하게 준비를 한다”고 칭찬했다. 김 감독의 설명을 듣고 이재원의 타격 연습을 지켜보자 이재원은 배팅볼을 연신 밀어치며 감각 유지에 힘을 쏟고 있었다.
올 시즌 이재원은 그간 강했던 왼손투수는 물론 오른손과 옆구리 유형 계통의 선수들에게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원은 지난해 전까지는 대부분 왼손투수만 상대하는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러나 지난해 오른손과 옆구리 계통 선수들과 많이 상대하며 경험을 쌓았고 올해는 이 유형 선수들에게도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재원의 득점권 강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흥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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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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