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초 정진호(27, 두산 베어스)가 친 타구가 목동구장 좌측 담장을 넘어갔다. 14이닝 침묵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빅 이닝의 시작이기도 했다.
지난 22일 목동에서 넥센을 맞아 두산은 타선이 집중력을 폭발시키며 12-9로 역전승을 거뒀다. 1패 뒤 반격에 성공한 두산은 11승 7패로 SK와 공동 2위가 됐다. 이전 경기에서 넥센에 0-12로 참패했던 두산은 하루 만에 크게 달라진 모습을 과시했다.
21일 경기에서 9이닝 내내 1점도 뽑지 못했고, 22일에도 5회초까지 득점하지 못한 두산은 넥센을 만나기 전 마지막 경기였던 18일 잠실 롯데전에서 9회말 최주환의 역전 끝내기 3점홈런을 포함해 6득점하며 7-5로 승리한 뒤 14이닝 연속 무득점 굴욕도 겪었다. 그러나 정진호의 홈런으로 이러한 긴 침묵도 깨졌다.

정진호의 데뷔 첫 홈런이기도 했던 두산의 6회초 첫 득점은 대량득점의 신호탄이었다. 마운드에 버티고 있던 선발 한현희에 이어 조상우까지 공략한 두산은 6회초 4-4 동점을 이뤘고, 7회초에는 결승타가 된 양의지의 솔로홈런, 김현수의 3점홈런을 묶어 8-4로 앞섰다. 두 번의 빅 이닝이 승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7회말 8-6으로 추격당하자 8회초 다시 양의지가 투런홈런을 터뜨린 것을 비롯해 3점을 보태 11-6을 만든 두산은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김하성의 3점홈런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자 9회초 홍성흔이 솔로홈런으로 다시 분위기를 돌려놓았고, 12-9로 경기는 끝났다. 넥센이 자랑하는 필승조 조상우가 출격했음에도 4득점한 이닝이 두 번이나 나온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올해 주자를 한 베이스 앞으로 보내기 위해 아웃카운트를 소비하는 작전을 지양하고 있다. 평소 “희생번트는 추격할 때가 아니라 도망갈 때 한 번씩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김 감독이다. 자신의 소신대로 많은 번트 작전을 펴지 않고 있고, 그 결과는 빈번한 빅 이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롯데전과 이번 넥센전을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을 잘 알 수 있다. 17일 잠실 롯데전에서 송승준을 일찌감치 공략해 1회말 7득점한 두산은 2회말에도 4점을 보탰다. 이 두 이닝에 뽑은 점수만으로 충분했다. 두산은 12-1로 승리했다. 다음날에는 1-5로 끌려갔지만 9회말 대거 6득점해 기적의 드라마를 썼다.
그 후 19일 경기가 우천 취소되고 21일에는 목동에서 투타 모두 답답한 경기를 치렀지만 하루 지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6회초부터 방망이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넥센 선발 한현희는 두산 타선이 두 바퀴 도는 시점까지 1실점으로 버텼으나, 그 뒤로는 전과 같은 압도적인 피칭을 하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어받은 투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이닝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두산 타선을 막아내기엔 버거웠다.
22일에서는 6~9회 연속으로 홈런이 터졌다. 그리고 그 중 6~8회에는 홈런 후 추가 득점(7회초에는 양의지의 솔로홈런 후 김현수의 3점홈런으로 득점 추가)도 있었다. 두산은 홈런으로 모든 베이스가 빈 상태에서도 다시 채워 나가며 넥센 마운드를 초토화했다. 14이닝이 흐르도록 휴화산이었던 타선이 침묵을 깨는 방식은 화끈한 빅 이닝이었다. 거의 한 경기에 한 번은 대량득점 이닝을 만들고 있는 두산 타선의 위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지켜볼 일이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