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투수는 2사 이후 이닝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투수다”
각 팀 사령탑, 그리고 야구 관계자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2사 후 승부를 어렵게 하며 이닝이 길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수비수는 없다. 한 야수는 “아무래도 이닝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집중력을 똑같이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투아웃을 잘 잡아놓고도 그 다음 볼넷을 내주거나 연속 안타를 맞으면 야수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피로감은 더 심해진다. 특히 볼넷은 힘이 쫙 빠지기 마련”이라고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2사 후 승부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는 선수가 좋은 투수라는 말도 성립된다. 벤치는 물론 팬들이 느끼는 안정감과 믿음감도 커진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도 특급 투수들의 피안타율은 2사 후 더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클레이튼 커쇼, 매디슨 범가너, 맥스 슈어저, 조니 쿠에토, 펠릭스 에르난데스 등 특급투수들의 2사 후 피안타율은 모두 1할대였다. 그렇다면 KBO 리그에서 그런 좋은 투수는 누가 있었을까.

양현종(KIA)은 그런 측면에서 ‘에이스’의 위용을 과시하는 투수다. 양현종은 올 시즌 2사 후 28명의 타자를 상대해 볼넷은 딱 하나만을 내줬다. 피안타율은 1할4푼8리, 피출루율은 1할7푼9리로 리그 3위다. 이닝을 쉽게 마감하는 투수였다. 아직 시즌이 한 달밖에 되지 않아 표본이 적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양현종은 2014년 시작부터 지금까지 2사 후 피출루율이 2할8푼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 중 가장 좋았다.
김광현(SK)도 마찬가지다. 특히 삼자범퇴 빈도가 가장 높은 투수 중 하나다. 김광현은 지난해부터 올 시즌 현재까지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단 2할2푼4리의 피출루율을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1할6푼5리였다. 모두 리그 최정상급 기록이다. 올 시즌만 따지면 피안타율 5푼9리를 기록 중이다. 김광현을 상대로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면 신이 난 김광현의 공을 치기는 더 어려웠다는 의미다.
올해는 손민한(NC)의 이름을 주목할 만하다. 올 시즌 2사 후 피출루율이 가장 낮았던 투수다. 제구가 워낙 좋아 볼넷을 쉽게 내주지 않는 손민한은 올 시즌 2사 후 26명의 타자를 상대해 피출루율 1할1푼5리를 기록했다. 야수들은 손민한이 투아웃을 잡으면 열 번의 아홉 번 꼴로 무난하게 덕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는 17명의 타자에게 단 한 번도 출루를 내주지 않았다.
핸리 소사(LG), 롯데의 새 외국인 투수 조시 린드블럼도 그런 측면에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두 선수는 2사 후 거의 안타를 맞지 않는 투수다. 소사는 1할7푼8리의 피출루율을 기록했다. 린드블럼은 올 시즌 현재까지 2사 후 피안타율은 8푼6리에 불과했다. 피출루율은 1할7푼9리다. 1할대 피출루율을 기록 중인 네 명의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은 외국인 투수들이 2사 후 승부에서 다소 고전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크리스 옥스프링(.451), 루카스 하렐(.447), 알프레도 피가로(.417), 조시 스틴슨(.405), 찰리 쉬렉(.400), 미치 탈보트(.394), 필립 험버(.388) 등 2사 후 피출루율이 높은 10명 중 9명이 외국인 투수다. 이런 수치가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시즌 초반의 일시적인 현상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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