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두 윙어 이청용(28, 크리스탈 팰리스)과 김보경(26, 위건)의 운명이 엇갈렸다.
'블루드래곤' 이청용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기성용 과 함께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한국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2010 남아공 월드컵서 2골을 터뜨리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서도 승승장구했다. 이청용은 지난 2009년 여름 FC서울서 볼튼으로 이적하며 꿈을 이뤘다. 이적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다음 시즌에도 활약을 이어가며 소속팀의 잔류를 도왔다.


하지만 이후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청용에게 지난 2011년 여름 뉴포트 카운티와의 프리시즌 경기는 악몽으로 남아있다. 톰 밀러에게 살인 태클을 당하며 오른쪽 정강이 골절의 중상을 입었다. 재활에만 1년을 매달렸을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이청용이라는 특급 날개를 잃은 볼튼은 2011-2012시즌 2부리그(챔피언십) 강등의 철퇴를 피하지 못했다. 이청용은 2012-2013시즌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3시즌 동안 챔피언십 무대를 누볐다. 하지만 전성기 때의 기량은 좀체 올라오지 않았다. 부상 후유증도 있었고, 챔피언십이 EPL에 비해 리그 경쟁력이 떨어진 탓도 있었다.
아픔은 계속 됐다. 이청용은 2014 브라질 월드컵서 감독의 전술 부재와 부진 등이 겹치며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삼켰다. 올해 초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서는 다시 한 번 부상 악령과 마주했다. 오만과 대회 조별리그 1차전서 상대의 깊숙한 태클을 피하지 못했다. 오른쪽 정강이뼈에 실금이 간 이청용은 대회 도중 짐을 싸며 27년 만의 준우승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이청용에게도 봄날이 찾아왔다. 지난 2월 볼튼에서 EPL 크리스탈 팰리스로 전격 이적했다. 챔피언십 무대의 오랜 생활을 청산하고 EPL 복귀의 꿈을 이룬 것이다. 재활에 매진한 이청용은 지난 26일(이하 한국시간) 헐 시티전서 26분을 소화하며 약 3년 만의 EPL 복귀전이자 크리스탈 팰리스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난한 데뷔전이었다.
이청용에게 이제 남은 것은 과거 볼튼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것이다. 올 시즌 종료까지 4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내달 24일 최종전서 오랜 절친인 기성용(27)의 소속팀 스완지 시티와 격돌을 앞두고 있어 국내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장밋빛 미래가 기대되는 이청용에 반해 김보경에겐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보경의 소속팀 위건은 지난 29일 3부리그(리그1) 강등이 확정됐다. '생존왕' 위건이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극적인 EPL 잔류 드라마를 써냈던 위건이었지만 지난 2012-2013시즌 2부리그로 강등된 후 2년 만에 3부리그 추락을 피하지 못했다.
김보경은 지난해 카디프 시티와 계약을 해지한 뒤 올해 2월 위건과 올 시즌까지 단기 계약을 맺었다. 이적 후 14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하며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펼치는 듯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위건이 2부리그에 잔류한 뒤 김보경이 재계약을 맺으면서 다시 한 배를 타는 것이었다. 굳건한 입지를 다진 김보경은 위건과 함께 재차 1부리그 승격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김보경은 '왼발의 달인' 하석주 아주대 감독 등 왼발 스페셜리스트의 뒤를 이를 후계자로 꼽힌다. 자로 잰 듯한 왼발 킥은 그만이 자랑하는 무기다. 김보경은 지난 2009년 FIFA 20세 이하 월드컵서 활약한 뒤 2010 남아공 월드컵 무대를 밟은 행운의 주인공이다. 2012 런던 올림픽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사상 첫 동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김보경은 올림픽 활약을 발판 삼아 그해 세레소 오사카서 카디프로 이적했다. 주전으로 뛰며 챔피언십 우승과 함께 승격을 도왔다. 탄탄대로가 깔리는 듯했다. 하지만 승격 첫 해 소속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다시 2부리그로 내려온 김보경은 수장이 바뀌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청운의 꿈을 안고 출전한 브라질 월드컵서도 경기 감각에 문제를 드러내며 부진했다. 절치부심, 위건서 재기를 노렸지만 다시 한 번 소속팀이 강등 당하는 악재 속 새 둥지를 찾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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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좌)-김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