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야구팀] 야구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라운드에는 오늘도 수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웃음 폭탄을 유발하는 농담부터 뼈있는 한마디까지 승부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 주중 3연전에서 과연 어떤 말들이 흘러나왔을까.
▲ "그건 재밌는 게 아니고 좋은 거다" - 두산 김태형 감독
28일 잠실 kt전에서 승리하며 두산은 단독 선두가 됐다. 그러면서 김태형 감독에게는 다가올 삼성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29일 경기가 우천 취소된 뒤 김 감독은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은 승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삼성과의 맞대결이) 큰 의미는 없다"는 말로 1, 2위 맞대결이 갖는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만약 지금이 9월이라면 삼성과의 3연전이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되묻자 김 감독은 "그건 재밌는 게 아니고 좋은 거다"라고 재치 있게 받아쳤다. 9월에도 단독 선두라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없을 것이다.

▲ "얼마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 kt 조범현 감독
웃을 수 없는 농담이었다. kt 조범현 감독은 늘어나는 부상자와 달라지지 않는 팀 전력에 매일 한숨만 늘어갈 뿐이다. 28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조 감독은 앞으로 만날 팀들과의 맞대결도 걱정하고 있었다. 아직 한화, LG, NC와 맞붙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 조 감독은 "(그 팀들은) 얼마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라며 자조섞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kt는 28일과 30일 잠실에서 두산에 패하며 연패가 길어졌다. 6연패에 빠진 kt가 주말 3연전에서 분위기 반전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 "누구 빼줄까? 말만 해" - 롯데 이종운 감독
경남고 애제자 한현희의 선발 등판날. 적장으로 만난 이종운 롯데 감독에게 경기 전 한현희가 찾아와 "전광판에 뜬 타자 중 한 명만 빼달라"고 '앙탈'을 부렸다. 이에 "누구 빼줄까? 말만 해"라며 받아친 이 감독. 한현희는 잽싸게 "아두치요"라며 흑심을 드러냈지만 이 감독은 "근데 어떡하냐. 라인업 뜨고 나서는 못 바꾸는데"라며 제자를 KO시키는 농담을 던져 주위를 웃게 만들었다.
▲ "3년 늙었어요" - 롯데 심수창
올해 꾸준히 선발로 등판했던 심수창은 29일 등판이 우천 연기로 미뤄진 뒤 30일 두 번째 투수로 나와 3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수확했다. 한 이닝 한 이닝 절박한 마음으로 던졌다는 그는 "선발로 나오다 중간으로 나가니 압박감이 다르더라"며 새삼 고개를 흔들었다. 지나가던 한 코치가 "다크서클 보라"며 웃자 "한 3년 늙었어요"라며 농담 반 진담 반 고생을 드러냈다.
▲ "3번 지고도 1등하고 있더만" - 삼성 류중일 감독
삼성은 지난달 24일부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주말 3연전 모두 패했다. 삼성이 롯데에 3연전 모두 패한 건 2010년 6월 4일부터 6일까지 대구 3연전 이후 약 5년 만이다. 류중일 감독은 28일 대구 두산전을 앞두고 "마산에서 잘 하다가 부산에서 다 졌다. 롯데에 (3연패 모두) 당한 게 5년만이라던데 3번 지고도 1등하고 있더만"이라고 여유있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은 28일 LG에 패하는 바람에 두산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 "닷새 근무하고 이틀 쉬잖아. 오늘이 그날이가" - 삼성 김용국 코치
박석민(삼성 내야수)은 28일 대구 LG전을 앞두고 평소보다 수비 훈련을 일찍 마무리지었다. 이에 김용국 코치는 "닷새 근무하고 이틀 쉬잖아. 오늘이 그날이가"라고 물었다. 이른바 주5일제 훈련이다. 김용국 코치는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일반인들과 똑같이 한단다"고 웃었다. 현역 시절 삼성의 황금 내야진의 한 축을 맡았던 김용국 코치는 획일된 훈련량을 고수하기 보다 상황에 따라 훈련량을 조절한다. 그래서 일까. 삼성 선수들은 "코치님께서 상황에 따라 조절해주셔서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 "소녀팬들의 힘을 받은 것 같다" -삼성 구자욱
구자욱은 29일 대구 LG전서 데뷔 첫 3안타를 때렸다. 이날 대구구장을 찾은 여학생들은 '꽃미남' 구자욱이 타석에 들어설때마다 큰 함성을 보냈다. 구자욱은 "이런 적이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면서 "소녀팬들의 힘을 받은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한편 구자욱은 1군에서의 한 달 점수를 묻자 주저없이 "0점"이라고 대답했다. "2군과 비교해 1군이 분명 투수들이 더 좋지만 못칠 공은 없었는데 내가 못쳤다"는 게 그의 푸념이다. 구자욱은 "앞으로 타석에서 좀 더 끈질기고 정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감독이 죄인입니다” - 김용희 SK 감독
연패에 빠진 팀의 수장은 경기 전 꼬박꼬박 이뤄지는 미디어 인터뷰가 괴롭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패에 허덕이는 감독들은 미디어 인터뷰를 고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제 취재진 앞에 선다고 해도 침묵이 흐르기 마련. 물어볼 말도 많지 않고, 대답할 말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대전 한화 3연전에서 모두 지고 돌아온 김용희 SK 감독을 둘러싼 분위기도 그랬다. 평소보다 질문이 적은 것을 간파한 듯 김 감독은 “질문이 많이 없으시네요. 감독이 죄인입니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28일 져 4연패를 당한 후에는 “연패를 끊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말을 아꼈다. 다행히 SK는 30일 NC전에서 9-6으로 이기고 4연패에서 탈출했다.
▲ “박찬호가 정말 대단했어” - 김경문 NC 감독
김경문 감독은 부상에 시달리는 투수들을 보며 “그런 측면에서 박찬호가 정말 대단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비록 텍사스 시절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몇 년 동안 그렇게 꾸준히 활약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도 10년간 10승이 결코 쉽지 않은데 미국의 강한 타자들을 상대로 꾸준히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다”라면서 “사실 좋은 약을 많이 먹는 선수들도 있지 않았는가”라고 웃었다. 지금에서야 밝혀진 이야기지만, 박찬호가 뛰던 시절은 많은 스타들이 약물을 복용한 이른바 ‘스테로이드의 시대’였다. 그렇게 힘을 키운 타자들과 정면으로 맞붙었던 박찬호의 기백은 아직도 팬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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