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27, SK)은 김광현이었다.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역투였다.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공을 믿고 승부하는 투지. 팬들이 기억하는 에이스 김광현의 모습 그대로였다.
김광현은 1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서 7⅔이닝 동안 단 2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1실점(비자책) 역투를 선보이며 올 시즌 최고의 투구를 펼쳤다. 투구수는 106개로 효율적이었다. 김광현의 트레이드 마크인 탈삼진은 적었다. 그러나 공격적인 승부로 KIA 타자들의 방망이를 유도했고 그 방망이를 이겨내는 구위를 선보이며 상대를 꽁꽁 묶었다. 마치 '칠 테면 쳐보라'라는 식으로 KIA 타선과 정면승부를 주저하지 않았다.
올 시즌 5경기에서 3승1패 평균자책점 4.88을 기록 중인 김광현이었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도 한 차례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김광현과 어울리지 않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경기 전 김용희 SK 감독은 “구위는 괜찮다. 잘해줄 것이다”라고 변치 않는 믿음을 과시했다.

하지만 KIA도 김광현에 맞서 우타자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선발 9번 유격수로 출전한 강한울을 제외하면 모든 타자가 우타자였다. 김광현은 올 시즌 좌타자를 상대로는 1할9푼5리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우타자를 상대로는 피안타율이 2할6푼9리까지 뛰었다. 이런 데이터를 감안한 KIA 벤치의 승부수였다. 몸 상태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중심타자 최희섭을 제외하면서 오른손 일색의 라인업을 짠 것이다.
2-0으로 앞선 1회 실점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이닝은 거의 완벽했다. 1회 실점도 실책이 빌미가 됐다. 1사 후 최용규를 3루수 땅볼로 유도했으나 3루수 최정이 튀는 바운드에 글러브를 잘 갖다 대지 못하며 주자가 나갔다. 이후 최용규가 발로 2루를 훔쳤고 필에게 좌전 적시타를 얻어맞고 1점을 내줬다. 다만 이범호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았고 필의 도루 시도를 견제로 잡아내며 추가 실점은 막았다.
2회부터는 빠른 공 위주로 적극적인 승부를 벌이기 시작했다. 김다원 나지완을 모두 유격수 땅볼로 잡았고 박기남은 빠른 공에 이은 느린 커브(114㎞)로 루킹 삼진 처리했다. 3회와 4회도 삼자범퇴였다. 3회는 이성우를 3루수 직선타로 잡은 것에 이어 강한울 김호령을 2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4회에는 최용규 필을 모두 외야 뜬공으로 잡았고 이범호의 빨래줄같은 타구를 3루수 최정이 잡아내며 이닝을 마쳤다.
팀이 득점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림은 없었다. 5회에는 김다원을 3루수 땅볼로, 나지완을 루킹 삼진으로, 박기남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냈다. 맞혀 잡는 피칭으로 투구수를 줄여나간 결과 5회까지 투구수는 75개로 효율적이었다. 볼넷은 하나도 없었다. 6회에는 2사 후 김호령에게 커브를 던지다 안타를 맞았지만 최용규를 3루수 땅볼로 유도하며 불을 껐다.
팀이 7회 1점을 내자 더 힘을 냈다. 필을 3루수 땅볼로, 이범호를 우익수 뜬공으로, 김다원을 3루수 땅볼로 잡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7회까지 98개의 공을 던진 김광현은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나지완 박기남을 외야 뜬공으로 돌려세우고 이날의 임무를 마쳤다.
이날 김광현은 최고 151km의 빠른 공을 던졌다. 그리고 그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전체 106개의 투구 중 빠른 공이 총 65개로 60%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이날 KIA 타자 중 김광현의 빠른 공을 받아쳐 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최고 139km에 이른 전매 특허 슬라이더의 완급을 조절하며 상대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었다. 15개의 커브는 타이밍 싸움용으로 써 톡톡히 재미를 봤다. 자신의 공, 그리고 동료들의 수비를 믿고 과감한 승부를 펼친 김광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익숙한 에이스 호칭과 시즌 4승이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