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야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화 우완 투수 배영수(34)가 이적 첫 승을 신고하며 터닝 포인트를 마련했다. 배영수는 지난 2일 대전 롯데전에서 6⅓이닝 3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 역투로 한화의 승리를 이끌며 시즌 첫 승이자 이적 후 처음으로 승리를 맛봤다. 시즌 초반 부상과 부진으로 기대를 밑돌았던 그가 이제야 배영수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 버리니까 이기더라

배영수는 개막 첫 주 허리 담 증세로 선발 로테이션을 건너뛰었다. 이후 팀 사정상 구원으로 투입되기도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확실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대전 SK전에서는 구원으로 나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2안타 2볼넷 1사구 3실점으로 흔들렸다. 이튿날 김성근 감독은 "삼성에 입단했을 때부터 배영수를 봤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마운드에서 강한 녀석인데 긴장을 하더라. 심리적으로 막아야겠다는 압박과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김 감독은 배영수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배영수는 "감독님께서 4~5일 정도 시간을 주셨다. 그동안 내 것을 많이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잠 잘 때에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버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현 시점에서는 버려야 이길 것 같더라. 광주에서 불펜피칭할 때도 코치님들 없이 혼자 하며 뭐가 문제일지 생각했다"고 준비 과정을 돌아봤다.
결론은 결국 마음이었다. 그는 "마음의 문제였다. 너무 잘하려는 의욕이 강했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았다. 프로야구 선수이기 때문에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마음을 급하게 먹었다"며 "이전 경기들은 마음이 너무 쫓기다 보니 힘만 들어갔다"고 문제점을 찾았다. 스스로 비워냄으로써 이길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 김성근 감독 야구 이해
배영수는 "감독님이 하시는 야구를 조금 더 이해해야 했는데 4월에는 그런 부분이 미흡했다"며 "경기 후반이 되면 감독님이 경기를 움직이신다. 우리 선수들은 감독님이 움직일 때 적소의 상태를 만들면 된다. 감독님이 중간으로 썼을 때 제대로 막지 못한 부분도 결국 그런 이해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고 반성했다. 선발-구원을 넘나드는 부분이 쉽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이해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책했다.
총 투구수 86개에서 미련 없이 마운드를 내려온 롯데전 7회 상황도 김성근 감독의 결정을 전적으로 신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더 던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잘 보셨다. 경기 초반부터 집중을 많이 해서 힘이 떨어져 있었다. 개인이 아닌 팀으로 봐서 내려오는 게 맞았다. 감독님 감이 완전히 좋으시기 때문에 결과도 좋았다"는 것이 배영수의 말이다.
▲ 권혁의 마무리를 보며
배영수의 한화 이적 첫 승 마지막 순간 마운드에는 권혁이 있었다. 권혁은 3일 연속으로 구원등판, 마지막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배영수의 승리를 지켰다. 지난 겨울 나란히 FA가 돼 삼성에서 한화로 이적한 두 투수는 벌써 14년째 2개 팀을 오가며 한솥밥 먹고 있다. 보통 인연이 아니다. 덕아웃에서 권혁의 세이브 순간을 지켜본 배영수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배영수는 "마지막에 혁이가 던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뭐랄까 '이게 야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묘했던 감정을 표현했다. 이어 그는 "혁이는 지금 워낙 잘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 나만 제 페이스를 찾아서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하게 돌면 팀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유니폼은 바뀌었지만 배영수가 앞을 막고, 권혁이 뒤를 막는 익숙한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승리 DNA의 클래스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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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