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불펜이 역사적인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불펜 투수들의 연투를 최대한 자제하는 방향으로 마운드를 운영 중이다. 김용희 SK 감독의 뚝심이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KBO 리그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결과가 나쁘면 투수 운영에 대한 승부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SK ‘시스템 불펜’의 결말이 주목되는 이유다.
SK는 2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서 2-5로 지며 3연승에 실패했다. 8회 2사 후 사사구로 베이스를 꽉 채워주더니 결국 이은총에게 우익수 키를 넘기는 싹쓸이 2루타를 맞고 무너졌다. 물론 경기에서 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날 SK의 8회 불펜 운영은 다소간의 의아함을 자아냈다.
8회 2사 후 전유수가 사사구 두 개를 내주자 SK 벤치는 언더핸드 박종훈을 투입했다. 다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나지완에게 볼넷을 내준 박종훈은 이은총에게 안타를 맞고 결승점을 허용했다. “왜 정우람이나 윤길현을 쓰지 않았는가”라는 의구심이 컸다. 경기를 포기할 상황이 아니었고 두 선수는 SK 불펜에서 가장 믿을 만한 구위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은총이 좌타자임을 고려하면 정우람의 투입을 생각할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정우람과 윤길현은 이날 불펜에서 대기하지 않았다. 김용희 감독은 3일 경기를 앞두고 당시 투수 운영에 대한 질문에 “정우람과 윤길현은 이틀 연속 던졌다. 투입시킬 생각이 없었다. 만약 2-2 상황으로 경기가 계속 흘러가 또 다른 불펜투수가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문광은은 대기시켜두고 있었다. 역시 이틀을 연속으로 던진 투수지만 3일과 4일 이틀 휴식을 준다는 계산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3일 연투는 시키지 않겠다”라는 김 감독의 시즌 전 공언이 이날 투수 운영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셈이다.
SK는 30일 인천 NC전에서 문광은이 23개, 정우람이 10개, 윤길현이 5개의 공을 던지며 승리를 지켰다. 1일 광주 KIA전에서도 문광은(3개), 정우람(10개), 윤길현(31개)이 차례로 마운드에 올라 뒷문을 든든하게 지켰다. 이렇게 이틀을 연달아 던진 세 선수는 경기에 투입시키지 않겠다는 구상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혹을 참기 힘든 상황에서도 김 감독은 이 카드들을 꺼내들지 않았다.
사실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전날 31개를 던진 윤길현의 투입은 다소 어려울 수 있었다고 해도 정우람의 이틀 도합 투구수는 20개였다. 다른 팀이었다면 적어도 아웃카운트 하나 정도를 잡기 위해 투입을 고려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마운드에서의 투구수만 생각하면 안 된다. 불펜에서 던지는 공, 연습투구 때 던지는 공, 그리고 이닝 사이에 몸을 풀기 위해 던지는 공까지 모두 생각을 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3일 연투는 되도록 자제하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실제 SK의 불펜투수들은 올 시즌 누구도 3일 연투를 하지 않았다. 이틀을 던지면 최소 하루는 쉬었다. 어느 하루 투구수가 30개를 넘어갈 때도 되도록 다음 경기는 휴식을 보장했다. 철저한 관리다. 그러나 승부처에서 정우람이나 윤길현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경기 막판이 어려워질 수 있다. 유연성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분명 존재한다. 투구수, 그리고 상대 전적에 따른 기계적인 교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의 신념은 확고하다. 3연투를 시키지 않는 투수 운영이 장기적으로 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예년에 비해 많은 144경기를 치러야 하고 날씨가 빨리 더워짐에 따라 투수들의 체력과 어깨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한 때 고무팔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정우람은 스스로도 “이제 30대가 돼 몸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2년의 공백으로 아직 컨디션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한창 때와 몸 상태가 같을 수는 없다. 윤길현은 지난해 어깨가 좋지 않았고 전유수와 진해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의 불펜 마당쇠였다. 문광은은 올해가 전업 불펜 요원으로 뛰는 첫 해다. 지금껏 누적된 피로, 앞으로 선수들의 미래를 고려하면 김 감독은 이런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편이다. 관리를 받은 선수들의 구위가 살아있다는 평가다. SK의 불펜 평균 자책점은 3.59로 삼성(2.66)에 이은 리그 2위다. 불펜투수들의 총 소화이닝은 92⅔이닝으로 리그에서 네 번째로 적었고 기출루자 득점허용률은 20%로 리그에서 가장 낮다. 문광은(평균자책점 2.00) 전유수(3.00) 정우람(2.77) 윤길현(3.27) 등 필승조의 평균자책점도 다른 팀에 비해 뒤질 것이 없다. 다만 승부처에서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김 감독의 신념을 실험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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