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이 사람을 아십니까] (5) SK 선수단의 발, 전창의 매니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5.07 08: 20

야구장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조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코칭스태프, 혹은 프런트라고 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들이 조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매주 1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이야기를 OSEN이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프로야구 선수들은 시즌 때 팔도유람을 한다. 홈·원정으로 이어지는 쉴새 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대개 그 ‘이동수단’이 되는 구단 버스는 선수들의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장거리 원정의 경우, 3~4시간을 꼬박 앉아 있어야 한다. 숙소와 경기장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런 구단버스를 운행하고 관리하는 이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SK도 1군에서 2대의 구단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창의(57) 매니저의 철두철미한 관리 속에 운행되고 또 정비된다. 선수들의 휴식, 그리고 안전과 직결된 만큼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하지만 전 매니저는 “보람이 크다”라고 껄껄 웃는다. 고된 일이지만 선수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 속에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자부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전 매니저는 국내 굴지의 고속버스 회사에서 풍부한 운행 경력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기사들의 안전교육 및 정비까지 도맡았던 팔방미인이다. SK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1호차를 담당하고 있다. 전 매니저는 구단버스 운행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덕목을 꼽는다. 첫째는 물론 안전이다. 그리고 둘째는 예방 정비다. 전 매니저는 운전 경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정비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모든 것에 민감한 프로선수들의 심리까지 한 눈에 꿰뚫는다.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할 만하다.
전 매니저는 스스로를 “평생 차량과 함께했다”라고 이야기한다. 자동차 학과를 나왔고 군 복무 시절에는 수송대대에 있었다. 회사에 취직한 이후로는 운행은 물론 교육도 담당했다. 30년 넘게 차량과 동고동락했다. 예방정비는 물론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경험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런 전 매니저에게도 구단버스를 운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경 써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정에 갈 때는 선수 못지않게 체력과 건강 관리에 힘을 써야 한다. 밤에 운전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절대 이 일을 할 수 없다. 식사를 제 때 못할 때도 많다. 전 매니저는 “원정지가 어디든 우리는 출발 전 절대 음식물을 먹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배가 차면 행여 잠이 올 수 있을까봐다.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다. 상황이 이런데 음주는 당연히 금지다. 설사 그날 운행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체력 관리와 연관이 있다. 그래서 시즌 중에는 마음 편히 술 한 잔 먹기도 쉽지 않다.
안전, 그리고 외로움과도 싸운다. 전 매니저는 “선수들은 경기를 마친 뒤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한다. 그러다 보면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전부 다 잠이 들기 마련이다. 버스 안에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에 행여 선수들이 깰까봐 차선 하나 바꾸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과속은 당연히 없다. 행동도 단정해야 한다. 전 매니저는 “운전하는 사람이 인상을 쓰거나,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운전이 조급해지면 선수들이 불안해 한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빨리 가서 내려주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SK 구단버스를 담당하는 매니저들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선수들의 개인 짐까지 운반한다는 것. 올해부터 원정 경기의 경우 택배 전문업체에서 선수들의 짐을 운반해주고 있지만 선수들 스스로가 휴대하는 물품이 없지는 않다. 전 매니저는 “10개 구단중 선수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은 우리 SK뿐이다. 일일이 다 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다른 팀 담당자들에게 욕도 많이 먹는다”라고 웃었다. 담당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부분도 있지만 구단에서도 그런 측면을 많이 요구한다는 것이 전 매니저의 설명이다. 이처럼 선수들을 위한 배려는 기본이다.
구단버스는 밖에서는 볼 수 없는 밀폐된 공간이다. 그렇다면 그 공간의 분위기는 어떨까. 전 매니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감독님도 원정 때는 꼭 구단버스를 타신다는 점도 달라졌다. 사실 경기에서 지는 날은 조용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올해는 졌다고 해서 침통한 분위기는 아니다. 감독님, 코치님들이 오히려 ‘내 탓이다’라며 선수들을 독려한다”고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분위기가 예년에 비해 더 좋아졌다. 전지훈련이 끝나고 공항에서 선수들을 만나는데 선수들 표정이 좋더라. ‘뭔가 달라지긴 하겠구나’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미소 지었다.
전 매니저는 “이 직업은 억지로 하면 재미가 없다. 프로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라면서 “물론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선수들은 끈끈하고 단합도 참 잘 된다. 뭉쳐 있는 기분”이라고 다시 자식뻘 선수들의 칭찬에 열을 올렸다. 전 매니저는 “우리 팬들은 버스에 낙서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사에서도 따뜻함이 묻어나고 예의도 참 바르다”라며 팬들에 대해서도 감사함을 드러낸 뒤 구단 버스에 새겨져 있는 한 휘장을 쳐다봤다. 바로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의 휘장. 전 매니저는 “조만간 기존 28인승 버스를 대체할 21인승 신형 버스가 구단에 도입된다. 새 차량에는 휘장 하나가 더 새겨졌으면 좋겠다”라고 웃으며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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