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직구’ 문광은, 14구 승부서 본 가능성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5.10 10: 00

“그냥 되는 볼로 승부를 했어요”
2015년 5월 8일은 문광은(28, SK)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010년 1군 무대에 데뷔한 뒤 첫 세이브의 감격을 맛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삼성의 강타선을 상대로, 또 위기를 이겨내며 거둔 세이브라 더 값졌다. 문광은은 첫 세이브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9회의 불꽃 빠른 공 승부는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7회 김성현의 대타 3점포로 드디어 0의 균형을 깬 SK는 8회 전유수를 올려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친 뒤 3-0으로 앞선 9회 마무리로 문광은을 투입했다. 팀의 마무리인 윤길현이 6일과 7일 적지 않은 공을 던져 이날은 대기 명단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지만 SK 벤치는 묵직한 빠른 공을 던지는 문광은의 상승세를 믿었다.

부담 탓이었을까. 초반에는 흔들렸다. 선두타자 우동균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다. 문광은은 9일 “경기에 들어갔을 때 특별히 긴장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경기 후 영상을 보니 조금 그랬던 것 같더라”라고 멋쩍어했다. 이어 다음 타자 나바로에게도 연속 2개의 볼을 던졌다. 등판 후 6구 연속 볼. 3루 측의 삼성 덕아웃이 술렁였다.
마무리 경험이 없는 선수가 삼성 강타선을 맞아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SK 벤치가 재빨리 움직였고 문광은은 이내 안정을 찾았다. “큰 것을 맞아도 동점은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리저리 변화구로 승부하기보다는 가장 자신 있는 구종으로 삼성 타선을 상대하는 전략으로 바꿨다. 역시 승부구는 빠른 공이었다.
커브를 잘 던지는 문광은이지만 최고 장점은 역시 빠른 공이다. 140㎞ 중반대에 이르는 빠르고 묵직한 공을 “쉽게 치기 힘들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 후 삼성 덕아웃 쪽에서도 “옆에서 보면 그렇게 치기 어려운 공은 아닌 것 같은데 막상 타석에 들어가면 다르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에 문광은은 빠른 공을 자신 있게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결국 3B-1S에서 약간 높은 빠른 공을 나바로가 잘못(?) 건드려주는 바람에 위기를 넘겼다.
다음 타자 최형우와도 풀카운트 승부를 벌인 문광은은 7구째 143㎞짜리 빠른 공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리그에서 가장 감이 좋은 타자를 빠른 공으로 윽박지른 것이다. 이어진 마지막 타자 박석민과의 승부는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두 선수 모두 예민한 집중력을 바탕으로 끈질긴 승부를 벌였다. 무려 14구 승부였다.
2B-2S에서 문광은은 5구부터 14구까지 10구 연속 모두 빠른 공만 던졌다. 힘 있는 타자인 박석민을 상대로 변화구로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빠른 공으로 정면승부를 걸었다. 박석민도 끈질기게 파울로 걷어내며 응수했지만 결국 14구째 공이 우익수 방향으로 뜨며 승부가 마무리됐다. 문광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잘 던질 수 있는 공으로 승부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공을 믿고 두려움 없는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문광은의 이런 승부는 올 시즌 SK 불펜의 가능성을 밝혀준다. 올 시즌 정우람 윤길현과 함께 필승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문광은은 9일까지 14경기에서 1세이브6홀드 평균자책점 1.46을 기록 중이다. 특급 성적이다. 이에 문광은은 “뒤에 주자를 지워주시는 분이 계셔서(정우람 윤길현을 의미) 그런 평균자책점이 난 것”이라고 겸손해했지만 불펜 전업 첫 해임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이다. 커브는 물론 최근 비율을 높이고 있는 슬라이더도 갖췄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펜투수로서 빠른 공 승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매력이다. 문광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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