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이 사람을 아십니까] (6) 양의지보다 공 많이 받는 남자, 두산 훈련대장 김준수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5.05.12 05: 49

야구장의 주인공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입니다. 조연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코칭스태프, 혹은 프런트라고 답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들이 조연인 건 맞지만,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매주 1회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들의 이야기를 OSEN이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주) 
매일 1군 선수들과 손발을 맞춘다. 퓨처스리그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이름과 번호가 찍힌 유니폼은 없다. 흔히 육성선수를 그라운드의 비정규직이라 하지만 이들 훈련보조요원 앞에서는 그런 말조차 미안해진다.
두산 베어스의 훈련지원 대장으로 불리는 김준수(28) 씨는 훈련보조요원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2007년 두산에 입단해 1년 일한 뒤 2년간 군복무를 한 김 씨는 2010년부터 다시 구단으로 돌아왔다. 벌써 7번째 시즌이다. 훈련보조요원으로 오랜 시간 잔뼈가 굵어 본인도 “10개 구단 통틀어 (나이가) 2~3번째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일을 계속하는 사이 김 씨는 2012년 가정을 꾸렸고, 10개월 된 딸도 생겼다.

거의 모든 훈련지원 인력이 그러하듯 김 씨 역시 고교시절까지는 선수로 뛰었다. “프로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봤다. 그리고 야구 관련 일을 찾다가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며 김 씨는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선수들은 아프면 체계적인 관리를 받고, 팀이 선수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활용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루만 쉬어도 훈련에 차질이 생긴다. 아파도 쉽게 말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자 김 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일본은 배팅볼 투수와 불펜 포수, 공 모으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들었다”며 한국과의 차이점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국내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며 희망적인 점도 언급했다.
자신의 말대로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김 씨는 “예전엔 혼자 모든 투수의 공을 받았다. 선발 5명과 캐치볼, 롱 토스, 불펜 피칭을 하면 정말 힘들다. 투수들은 5일에 한 번이지만 나는 매일이었다”며 그때를 돌아봤다. 그러다 보니 무릎과 골반이 고질적으로 아프다. 그럼에도 김 씨는 “2012년에 공을 받다 손가락을 다쳐 일주일 쉰 것 말곤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도 배팅볼을 던졌으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쉰 적은 없는 셈이다.
 
국내 구단에서는 4명이 배팅볼을 던지고 마스크도 쓴다. 그래서 1명의 비중이 상상 이상이다. 팀 내에서 공을 가장 많이 받느냐고 묻자 김 씨는 “아마 그럴 것이다. 몸 풀 때부터 받아주니까 하루에 1000개 정도 받는다. 캠프 때는 한 명이 100개씩만 던져도 훨씬 많다”고 말을 이었다. 매일 변하는 구위에 대해 투수들이 먼저 묻기도 하는데, 김 씨는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등판 직전에는 투수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
투수들과 함께할 시간이 많다 보니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그들이 제 몫을 했을 때다. 김 씨는 “투수들이 잘 던졌을 때 가장 보람 있다. 호투하고 난 뒤에 고맙다고 말하고 가끔 밥을 사주기도 한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 선발투수 중에서는 더스틴 니퍼트가 김 씨와 호흡을 맞춘다. 지금은 팀을 떠난 외국인 투수 중 기억나는 선수가 없었는지 묻자 “잘 챙겨줬던 프록터가 생각난다. 다른 외국인 선수와 달랐다”며 스캇 프록터를 가장 먼저 꼽았다.
일하면서 느끼는 뿌듯함도 좋지만, 김 씨는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기도 한다. 10개 구단 훈련보조요원들의 공통적인 생각일 것이다. 대부분 구단 직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김 씨는 이를 위해 틈틈이 전력분석 공부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가정이 생기면서 책임감의 크기도 더욱 커졌다.
“처음엔 지금까지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한 해 하고 군대를 가면서 다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일은 힘들었고, 같은 또래 선수들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없지 않았다”는 김 씨는 “어릴 땐 그래서 그만 두는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군대 가서 생각이 바뀌었다. 선수들은 그게 길이고, 나는 내 할 일이 있다”는 말로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이제 막 훈련보조 일을 시작한 이들이라면 새겨들어도 좋을 이야기다.
팀 내 훈련지원 인원 중 맏형인 김 씨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소망이 있는지 물었을 땐 “계속 다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가장 먼저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팀이 우승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들어온 뒤에 준우승만 2번 있었다. 그래서 그게 가장 큰 바람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오늘도 우승을 위해 묵묵히 투수들의 공을 받아내며 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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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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