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이지만 '푸른 피의 사나이' 양준혁이 해태의 검정&빨강 유니폼을 입고 뛰던 시절이 있었다. 1999년 대구구장에서 '해태 타자' 양준혁 타석이 되면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양준혁도 고향 팬들에게 모자 벗어 인사하는 훈훈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KBO 초창기 '헐크'로 활약하며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던 이만수 전 SK 감독도 1997년을 끝으로 은퇴한 뒤 10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SK 코치로 젊은 시절 청춘을 바쳤던 대구구장을 찾았다. 당시 대구팬들은 적이 되어 돌아온 이만수에게 장미꽃을 던지며 고향 귀환을 환대했다.
그리고 2015년 5월, 비슷한 풍경이 연출될지 모르겠다. 12일부터 14일까지 대구구장에서 열리는 삼성-한화전은 여러모로 관심을 모은다. 그 중에서도 오랜 기간 삼성에서 활약한 투수 배영수(34) 권혁(32)이 처음으로 적이 돼 대구구장을 찾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화맨'으로 대구구장을 다시 밟게 됐다.

배영수와 권혁은 삼성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선수들이다. 경북고 출신 배영수는 2000년, 포철공고 출신 권혁은 2002년 나란히 1차 지명으로 입단한 특급 유망주였다. 지역 연고 출신의 강속구 투수였던 배영수와 권혁은 삼성의 7차례 우승 순간마다 자리에 함께 할 정도로 마운드 주축이었다.
한 때 리그 최고 선발과 구원으로 명성을 떨쳤던 배영수와 권혁은 그러나 팔꿈치 수술과 후유증으로 시간이 갈수록 과거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정들었던 삼성과 결별을 택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한화로의 FA 이적을 결정했고, 이젠 한 배를 타고 친정 팀을 겨냥한다.
권혁은 지난 3월22일 시범경기에서 처음 대구구장 마운드에 올랐다. 시범경기에도 적잖은 환호가 쏟아졌다. 지난달 14일 대전에서 삼성과 한 차례 붙어 1⅔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홀드를 따냈다. 당시 권혁은 "상대가 삼성이라고 해서 내가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내색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삼성에서 내가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고, 새로운 팀으로 이적해서 나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배영수는 시범경기에서 대구 원정에 동행하지 않아 이번이 이적 후 첫 대구 방문. 지난달 16일 대전에서 삼성을 상대로 선발 예고됐으나 비로 연기된 바람에 무산된 바 있다. 대구에서 삼성을 상대로 첫 등판한다. 그는 "친정팀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다"면서도 "경기를 해봐야 실감이 날 듯하다"고 말했다. 로테이션 순서상 배영수는 14일 경기에 선발등판한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대전에서 적이 돼 만난 권혁의 투구를 보고는 "혁이가 잘 던지더라. 다른 팀에 갔지만 가서 잘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팀은 떠났지만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애틋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한화맨이 된 배영수와 권혁의 첫 대구 나들이에는 어떤 풍경이 연출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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