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 삼성과의 경기 전에는 낯선 배팅볼 투수가 등장했다. 주섬주섬 배팅볼을 던질 채비를 마친 그는 구슬땀을 흘리며 30분 넘게 동료들을 향해 연신 배팅볼을 던졌다. 일반적인 경기보조요원이 아니었다. SK 주장 조동화가 그 주인공이었다.
선수가 선수를 상대로 배팅볼을 던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궁금했다. 배팅볼을 던지고 내려오는 조동화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조동화는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들켰다는 듯이 “내가 배팅볼을 던지면 그날 타선이 잘 맞더라. 오늘 내가 선발로 나가는 날이 아니라 던졌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이날 삼성 선발은 좌완 차우찬이었다. SK에도 왼손 배팅볼 투수가 있지만 이날은 조동화가 특별히 배팅볼을 자청한 것이었다. 선발로 나서지는 않지만 그만큼 팀의 승리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조동화의 배팅볼을 친 선수들도 내심 만족감을 표시했다. 조동화는 “이명기한테 던지는 건 편했는데 (박)진만이형한테 던질 때는 이상하게 제구가 안 되더라”라고 웃었다. 그러나 박진만은 조동화의 배팅볼에 대해 “볼끝이 살아있더라”라며 웃으며 감상평을 전했다. 이재원은 “(지난해까지 SK 수석코치였던) 성준 코치님이 던지는 것 같았다”라고 미소 지었고 정상호는 “공주고 시절 공주고 패전처리 투수였다. 대회에서 상대해 본 경험이 있다”고 남다른 이력을 소개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모두가 조동화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배팅볼을 던지는 날 승률이 좋았다는 것을 떠올린 조동화의 필승 투혼에 선수들도 진지하게 응한 것이다. 결국 SK는 이날 삼성 선발 차우찬을 상대로 3이닝 동안 7득점하며 승기를 잡은 끝에 7-5로 이겼다. 선수들 스스로가 조동화의 배팅볼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정상호는 경기 후 “오늘 훈련 때 조동화 주장이 배팅볼을 던져줘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SK의 좋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조동화는 팀 분위기에 대한 질문에 “우리 분위기는 항상 좋았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그리고 세 차례의 우승에서 쌓인 끈끈한 팀워크는 여전하다. 어쩌면 전력보다 중요한 밑천이다. 전력은 부상자나 보강 여부에 따라 요동치기 마련이지만 이런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삼성과의 3연전에서는 조동화 외에도 다른 선수의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다. 베테랑 불펜투수인 이재영은 8일 선발로 나선 김광현에게 “체인지업을 자제하라”는 조언을 남겼다고 한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구위가 워낙 좋으니 자신의 공을 믿고 과감히 승부하라는 뜻이었다. 실제 김광현은 이날 체인지업을 하나도 던지지 않았지만 삼성 강타선을 7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시즌 5승째를 챙겼다.
0-0으로 맞선 7회 2사 1,2루에서 터진 대타 김성현의 3점 홈런 또한 윤길현의 도움이 있었다. 이날 선발 명단에서 빠진 김성현은 덕아웃 뒤편 복도에서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김성현은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윤길현에게 “슬라이더에 대처할 수 있는 공략법을 알려달라”라고 했고 윤길현은 10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슬라이더의 특성과 대처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 때 김성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얼떨결에 타석에 들어선 김성현은 장원삼의 초구 슬라이더를 받아쳐 결승 3점포를 터뜨렸다. 김성현의 얼굴에도, 윤길현의 얼굴에도 웃음이 터졌다. SK를 이끄는 진짜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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