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경기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사직구장. 홈팀 롯데가 승리를 거두면 방송 인터뷰가 진행되고 구단 자체 투타 MVP가 팬들에게 소감을 밝힌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사직구장 라이트에 불이 꺼진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모두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샤워를 하고 있던 그 시간에 팀 최고참인 임재철이 후배 한 명과 함께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임재철은 불이 꺼진 가운데 가볍게 러닝을 하며 몸을 풀었고, 청소를 하기 위해 몇 개만 켜둔 사직구장 조명 아래에서 스윙연습에 매진했다. 일회성 이벤트는 결코 아니다. 홈경기가 끝난 뒤 임재철은 묵묵히 훈련을 했다.
이번 겨울 임재철은 고향 팀 롯데에 돌아왔다. 올해 나이 마흔,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그를 원하는 구단은 여럿 있었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같이 야구를 하자. 우리 팀은 네가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었지만, 임재철은 먼저 그를 불렀던 롯데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임재철은 시즌 초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출전 기회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15경기에 나갔지만 주로 대타 혹은 대수비, 대주자였다. 12일 경기 전까지 성적은 11타수 1안타, 대타로 나와서 친 홈런 하나가 마지막 안타였다.
팀이 연패에 빠지자 겉으로 보기에는 역할이 크지 않은 임재철이 엔트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옳은 일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임재철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했고, 또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을 했다. 이종운 감독이 그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외야수' 임재철의 가치나 기량이 떨어진 건 결코 아니다. 세대교체가 필요한 롯데는 젊은 선수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임재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아무리 팀이 먼저라고 해도,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뛰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임재철은 기회가 주어질 그 순간을 위해 경기가 끝난 뒤에도 훈련에 매진했다. "지금은 내가 출전을 못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며 출전을 준비했던 임재철은 12일 사직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 출전을 명받았다.
준비된 외야수 임재철은 수비에서 결정적인 홈 보살을 잡아냈고, 2루타 하나에 8회에는 결승 스퀴즈까지 성공시켰다. 6연패를 끊은 경기에서만큼은 후배들의 멘토가 아닌 전성기 선수였다. 그리고 이게 롯데가 임재철에게 기대했던 모습이다.
cleanup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