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이었다. 이 무슨 소리인가. 귀를 의심할 만한 ‘막말’ 수준의 거친 언사에 일부 대의원들은 물론 그 자리에 참석했던 많은 이들은 내심 뜨악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바로 지난 5월 12일 대한야구협회 회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상희(64) 중소기업진흥회 회장의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번 대한야구협회장 선거는 박상희 전 수석부회장과 김종업 전부회장(회장 직무대행)의 맞대결로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비방과 인신공격이 난무, 정치판 선거를 뺨칠 정도로 지저분했다는 게 중론이었다.

선거 과정이야 어찌됐든, 일단 당선된 사람은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포용하고 아량을 베푸는 것이 사회 통념이다. 헌데, 정치판도 아니고 경기단체장에 오른 인사가 덕담이나 위로의 말은 고사하고 대뜸 “패거리” “KBO에 꿀릴 게 없다. 통합해야한다” “샅바싸움을 해야 한다”는 따위의 정제되지 못한 거친 언사를 남발, 그동안 어지러웠던 대한야구협회의 ‘밝은 미래’를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그 같은 박상희 회장의 ‘말’이 그의 평소 생각, 소신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즉흥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무릇 언사는 그 사람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 남의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는 막말이 난무하는 사회다. 명색이 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인사들은 더군다나 모름지기 가리고 삼가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실정이다. 박상희 회장의 발언은 ‘막말 파동’으로 중앙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박용성 전 두산 회장을 연상케 한다. 협조와 화합으로 야구 발전을 꾀해도 모자랄 판에 새 회장에 당선된 사람이 마구잡이식 발언을 ‘난사’하는 바람에 야구 판이 더욱 소란스럽게 됐다.
선거 결과는 10-9, 겨우 한 표 차이였다. 박상희 회장이 내뱉은 ‘패거리’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반대편 사람들을 지칭한다면, 같은 얘기로 그를 지지했던 대의원들 역시 패거리, 붕당이 아닌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대한야구협회는 이병석 회장 사임 이후 극심한 내홍에 시달려왔다. 전직 임원과 간부가 공문서(경기실적서) 조작과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전을 벌였고 사정당국의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다.
박상희 신임 회장은 이병석 회장 시절 수석부회장이었다. 그 자신도 도의적으로 그런 사태에 결코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만약,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면 수석부회장으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방기, 직무유기를 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게다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연합회의 통합에 따라 야구협회를 포함한 모든 경기단체들도 ‘통합’이라는 현안을 앞에 놓고 있다. 생뚱맞고도 엉뚱한 ‘KBA, KBO’ 통합을 주장할 게 아니라 발등의 불인 생활체육야구연합회와의 통합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노릇이다. 당연하지만, 대한야구협회는 학생야구를 포함한 아마추어 선수, 단체를 관할하는 행정조직이고, KBO는 프로단체이다. 연관은 있지만 제 갈 길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프로, 아마 기구 통합을 외친 배경이 참 궁금하다.
박상희 회장은 기업인이다. 현재 중소기업진흥회 회장이고,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선거자금 책임자였고 새누리당 재정위원장도 지냈다.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한 대의원에게 말했다. 다만 경제4단체장에는 관심이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행여 그가 대한야구협회를 발판 삼아 ‘더 높은 경제적인 지위’를 꾀하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KBO와 KBA는 상생과 상보적인 관계이다. 상투적이지만 KBA는 KBO의 젖줄이다. 그 동안 KBO가 중, 고, 대학 팀 창단에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것도 다 그런 까닭이었다.
그런데도, 대립각을 세워 ‘샅바 싸움’을 해서 무엇을 얻자는 것인가.
깨어있지 못한 국민은 그 수준의 지도자를 만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대한야구협회 대의원들의 이번 ‘선택’은 그들에게 맞는 수준의 회장을 만들어냈다고 해야겠다.
대한야구협회는 이번 회장 선거를 앞두고 열었던 이사회에서 4명의 선거관리 위원을 선임했다. 군말을 하자면, 그 가운데 선거관리위원이었던 일구회 이재환 회장은 김종업 전 부회장 편에 서서 선거운동을 했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인사가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이다. 말썽이 나자 그는 대의원 투표 직전에 사임했다. 이게 현재 대한야구협회의 수준이자 민낯이고 숨길 수 없는 자화상이다. 한 대의원이 말한, ‘도긴 개긴’의 표현이 적확하다.
박상희 새 회장은 대한야구협회를 ‘쇄신’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자면, 그 자신부터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해야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