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제 몫을 하고 있는 SK 새 외국인 타자 앤드류 브라운(31)의 이야기다. 적응을 마친 후 좋은 성적을 내고 브라운의 포효 속에 이미 전임자의 악몽은 지워지고 있다.
브라운은 1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영웅이 됐다. 추격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내친 김에 마침표까지 찍었다. 1-7로 뒤진 6회 솔로홈런을 기록하더니 7-8로 뒤진 9회 2사 1루에서는 두산 마무리 윤명준을 상대로 우중월 끝내기 2점 홈런을 터뜨렸다. 7점차 대역전극 드라마의 판권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새겨 넣은 한 판이었다. 시즌 10호, 그리고 11호 홈런이었다.
시즌 초반 한국무대의 낯선 스트라이크존에 고전했던 브라운은 서서히 자신의 기록을 끌어올렸다. 이제는 다른 선수 부럽지 않은 성적이다. 4월까지만 해도 1할대에서 허덕이던 타율은 14일 현재 2할8푼6리까지 올라왔다. 여기에 리그 공동 3위에 해당되는 11개의 대포를 터뜨렸고 타점(28타점)에서도 공동 9위에 오르며 ‘TOP 10’에 진입했다. 1.008의 OPS(출루율+장타율)도 리그 13위다.

이런 브라운의 활약 속에 전임자의 끔찍했던 악몽도 옛일이 되고 있다. SK는 지난해 MLB 통산 135홈런을 기록했던 거물급 외국인 루크 스캇을 영입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한국무대를 밟은 외국인 타자 중 최고 경력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실제 스캇은 확고한 자신만의 타격 이론을 가진 선수였으며 국내 선수들이 배울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자기중심적인 성향 또한 한국 실정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이만수 당시 감독과의 언쟁 끝에 퇴출됐다.
스캇이 지난해 남긴 기록은 33경기에서 타율 2할6푼7리, 28안타, 6홈런, 17타점이었다. 브라운은 14일까지 34경기에서 벌써 34개의 안타와 11개의 홈런, 그리고 28타점을 올렸다. 비슷한 표본의 성적만 놓고 봐도 전임자보다 훨씬 낫다. 아직 시즌이 30%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누적 성적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이미 브라운은 2004년 브리또 이후 두 자릿수 홈런을 친 SK 첫 외국인 타자로 등극했다.
쓰임새도 훨씬 유용하다. 스캇은 외야 수비력이 떨어졌다. 그나마 볼 수 있는 포지션은 좌익수 정도였다. 지명타자로 뛰는 일이 많았다. 타순을 짤 때 어려움이 있었다. 기동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브라운은 다르다. 평균 정도의 우익수 수비를 볼 수 있으며 어깨도 강해 3루로 뛰는 주자들을 묶어둘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허를 찌르는 도루 능력도 있다. 올 시즌 3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저돌적인 주루 플레이도 돋보인다.
부상에 대처하는 자세도 다르다. 스캇은 조금만 아프면 벤치에 ‘뛸 수 없다’라는 사인을 냈다. 좋게 말하면 철저한 자기관리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인 성향이었다. 그러나 브라운은 좀 더 헌신적이다. 강속구에 맞아 어깨가 아플 때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경기에 나섰다. 여러모로 비교 우위다. 수준급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메릴 켈리와 함께, SK가 지난해의 외국인 악몽을 지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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