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자에게는 결실이 찾아오게 되어있다. 한화 좌완 투수 김기현(26)이 감격적인 프로 데뷔 첫 승으로 야구인생의 뜻깊은 날을 보냈다.
김기현은 지난 14일 대구 삼성전에 2회 구원등판, 3이닝 1피안타(1피홈런) 3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이틀 만에 다시 선발로 나온 안영명이 조기에 강판, 2회부터 구원등판한 그는 득점권 위기에서 구자욱과 최형우를 삼진 돌려세우며 5회 1사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한화가 9-7로 이기며 김기현은 프로 데뷔 첫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지난해 1군 데뷔한 후 2년 40경기만의 첫 승. 오랜 시련과 도전 끝에 맺은 값진 결실이었다.
▲ 두 번의 프로 미지명과 방출

신일고-원광대 출신의 김기현은 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후 두 번이나 프로에서 신인 지명을 받지 못했다. 2012년 창단했던 신생팀 NC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며 힘겹게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NC에서도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고, 잠시 동안 야구를 관둬야 했다. 그해 연말 서울의 사회인야구 교습실에서 코치로 일했다. "NC에서 나온 후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내가 해서 직접 돈을 벌고 싶었고, 사회인야구 코치를 했다"고 떠올렸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코치 일을 하며 배팅볼을 무던히도 던졌다. 가끔 사회인야구 경기에도 나섰고,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던 야구를 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아 올랐다. 2013년 여름부터 모교 신일고에서 개인훈련을 시작했고, 9월 신생팀 kt의 트라이아웃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쯤 지인의 연락을 받고 한화에서 먼저 테스트를 치렀다. kt에는 양해를 구하고 트라이아웃 불참을 알렸고, 벼랑 끝 심정으로 테스트를 보며 합격을 받았다.
당시 그의 테스트를 지켜본 관계자는 "볼은 빠르지 않지만 체격과 제구가 좋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봤다. 하고자 하는 의지도 눈에 보였다"고 기억했다. 김기현은 첫 해부터 정식선수로 전환된 뒤 지난해 6월11일 처음 1군에 올라왔다. 주로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했지만, 그에겐 매일 하루가 벅찬 감동의 연속이었다. 24경기 1패1홀드 평균자책점 5.79. 그때 김기현은 "1군에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절실하다"고 말했다.
▲ 2년차, 이젠 당당한 불펜 한 축
첫 해 가능성을 보여준 김기현은 2년차가 된 올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시즌 16경기 1승1홀드 평균자책점 4.15. 13이닝을 던지며 탈삼진 15개로 위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승계주자 실점률도 12.5%(3/24)에 불과하다. 이제는 김성근 감독이 경기 중반 위기에서 찾는 투수가 됐다. 좌타자 원포인트 릴리프에서 좌우 타자 가리지 않는 투수로 역할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삼성전 첫 승 후에도 김성근 감독은 "김기현이 아주 잘 던졌다. 칭찬을 해주고 싶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최근 김기현은 "감독님께서 계속 기회를 주신다. 믿고 내보내주시는 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제는 나도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생기다 보니 직구를 던져도 전보다 더 힘이 붙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여기에 슬라이더와 너클 커브를 결정구로 효과적절히 활용하며 승부처에서도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끌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김기현은 야구에 완전히 몰입돼 있다. 그는 "지금은 다른 것 없이 야구만 생각하고 있다. 무조건 야구만 해야 한다. 캠프 때 열심히 훈련하며 만든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불안하다. 이럴 때일수록 평소 생활부터 나 스스로 관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숱한 시련을 겪어본 그이기에 지금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당당한 한화 불펜의 한 축으로 자리했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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