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28, 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뒤, KBO 리그의 유격수 판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일단 초반 페이스는 어느 한 선수가 확 치고 나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후보자들의 성적에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어떤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향해 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강정호는 최근 몇 년간 KBO 리그 최고의 유격수였다. 2010년 이후 골든글러브만 4번을 차지했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3년 연속 수상을 하기도 했다. 경쟁자가 마땅치 않았다. 우선 타격 성적에서 경쟁자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2012년에는 타율 3할1푼4리에 25홈런, 2013년에는 타율 2할9푼1리에 22홈런, 그리고 지난해에는 타율 3할5푼6리에 40홈런, 117타점이라는 자신의 경력 최고 성적을 쓰며 당당하게 MLB로 진출했다.
수비에서도 크게 흠을 잡을 곳이 없었다. 데뷔 초기까지만 해도 수비가 다소 불안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점차 그런 평가를 지워갔다. 간결한 동작, 강한 어깨로 주자들의 저승사자가 됐다. 이처럼 공·수 양면에서 최고 기량을 선보인 강정호가 오랜 기간 왕좌를 차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강정호가 없다. 강정호에 가렸던 2인자들이 최고 타이틀을 얻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왕좌를 향한 보폭이 다들 엇비슷하다. 모든 기록을 16일로 기준으로 해 규정타석을 소화한 유격수 중 현재 타율 1위는 김재호(두산)다. 타율 3할1푼5리를 기록 중이고 17타점은 유격수 중 공동 2위에 해당된다. 2위는 강정호의 직속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김하성(넥센)이다. 타율 3할2리에 8홈런, 23타점을 기록했다. 장타력 측면에서는 가장 강정호에 근접해 있는 선수라고 볼 수 있다. 3위는 김성현(SK)이다. 2할8푼2리의 타율을 기록 중이다.
4위는 당초 강정호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상수(삼성)로 2할7푼7리다. 5위부터는 타격이 기대에 못 미친다. 오지환(LG)은 2할3푼4리, 강한울(KIA)은 2할2푼7리, 손시헌(NC)은 1할5푼5리다. 그런데 공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들은 수비에서 점수를 조금 까먹고 있다. 수비 지표는 공격 지표를 거의 거꾸로 세워놓은 것과 같다.
물론 수비율로 수비수의 능력을 모두 측정할 수는 없다. 실책의 기준도 애매할 수 있다. 다만 수비율을 본다면 김재호는 9할5푼6리, 김하성은 9할5푼5리다. 두 선수의 수비적 평판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시즌 초반 수비 슬럼프에 빠져 있는 김성현은 9할2푼1리로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오히려 실책으로 드러나는 수비력은 오지환(LG)과 손시헌(NC)이 안정적이다. 오지환의 수비율은 9할8푼2리로 유격수 중에서 가장 좋다. 손시헌은 9할8푼1리로 2위다. 김상수는 9할7푼5리로 선전 중이다.
타율이 높으면 수비율이 떨어지고, 수비율이 높으면 타율이 떨어지는 엇박자 행보인 것이다. 강정호는 지난해 뛰어난 공격 지표를 기록하면서도 9할8푼1리라는 유격수 최정상급 수비율을 기록했다. 113경기에서 942⅓이닝을 소화하며 실책은 9개뿐이었다. 강정호의 대단함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가운데 선수들의 몸이 풀릴 앞으로의 추세는 어떻게 변해갈지 관심사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