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선택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올 시즌 ‘시스템 야구’를 주창한 SK가 시즌 초반 상위권에 위치하며 비교적 무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역시 마운드 운영이다. 철저한 관리가 장기 레이스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승부처에 약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SK 시스템 마운드의 실체와 기대효과는 무엇일까.
초반 성적은 나쁘지 않다. SK는 17일 현재 3.9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삼성(3.88)과 1위를 놓고 치열한 고지전을 벌이고 있다. 선발 평균자책점은 4.34로 두산(4.29)에 이은 2위, 불펜 평균자책점은 3.50으로 삼성(2.73)에 이은 2위다. 양쪽 모두 고른 성적을 내고 있다. 만약 초반 성적이 나빴다면 시스템 마운드에 대한 회의론이 불거졌겠지만 일단 성적이 방패막이가 되고 있다.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철저한 투구수와 휴식일 관리

전체 일정의 25% 가량을 소화한 현재까지 드러난 원칙 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투구수와 휴식일 관리다. 김용희 감독이 부임 직후부터 강조해온 부분이다. 김 감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되도록 3일 연투는 자제하겠다”라고 공언해왔다. 선수들의 구위, 그리고 장기적인 몸 상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론이다. 이에 김 감독은 개막 후부터 거의 대부분 13명의 투수 엔트리를 운영하며 마운드를 폭넓게 가져가고 있다.
선발투수들의 경우는 4월 한 달이 관리 기간이었다. 전지훈련부터 그런 철학이 드러났다. 선수들은 예년에 비해 몸 상태를 조금 천천히 끌어올렸다. 두 외국인 투수(밴와트, 켈리)는 아예 마이너리그 개막 일정(4월 초)에 맞추도록 배려했다. 두 투수는 오키나와 연습경기에 단 한 번도 등판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모든 선발투수들이 80~90개 가량의 투구수만 기록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SK의 퀵후크가 초반 일시적으로 많아진 이유다.
김 감독과 김상진 투수코치가 구상하는 시스템상에서 아직 쌀쌀한 4월은 예열 기간이었다는 의미다. 그렇게 경기당 5개 정도씩 투구수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정상 단계다. 김 코치는 “이제는 모든 선발투수들이 120개씩 던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SK 선발투수들은 4월보다 5월에 좋은 구위를 뽐내고 있다. 이제는 대부분 100개 이상을 던진다. 다만 선수마다 한계투구수, 즉 구위가 떨어지는 시점은 다르게 보고 있다. 교체 타이밍과 연관이 있다. 이는 전적으로 시스템이 아닌, 현장의 눈으로 파악한다. 정해진 투구수까지 밀어붙인다는 것은 오해다.
불펜은 철저한 관리로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원칙은 ‘3연투 자제’, ‘롱릴리프를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은 경기당 30개 내외로 관리’다. 실제 올 시즌 시작 후 3일 연투를 한 선수는 전유수와 정우람으로 각각 한 차례밖에 없었다. 3일 연투도 대전제는 있다. 직전 2경기의 투구수가 많지 않아야 한다. 대개 이틀 도합 40개 안팎을 기준으로 삼는다. 추격조 선수들도 경기당 30개 내외에서 끊어주고 있다.
휴식일 관리는 더 철저하다. 경기당 30개를 넘기면 대부분 다음날은 쉬었다. 40개 이상을 던질 수밖에 없는 롱릴리프의 경우 투구수마다 지정된 휴식일이 있다. 행여 3일 연투가 불가피한 상황이 와도 이틀은 쉬게 해 철저히 관리를 해주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선발도 마찬가지다. 채병룡 박종훈 등 롱릴리프를 활용해 때로는 모든 선발투수들이 5일을 쉬고 등판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있다. 우천취소가 되면 더 좋은 선발을 끌어 쓰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로테이션을 뒤바꾸는 일은 없다.

▲ 숨겨진 시스템, 그리고 기대효과
불펜의 경우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이 다가 아니다. 숨겨진 시스템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SK 시스템 불펜의 정말 획기적인 점은 여기에 있다. 우선 몸을 푸는 시스템이다. 김 감독과 김 코치는 “불펜에서 던지는 것도 투구수로 계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에서 던지는 게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불펜투수들은 10~20개 정도의 공을 던지고 마운드에 향한다. 실제 경기에서 20개를 던지더라도 불펜에서 던지는 공, 연습투구수, 이닝 사이 던지는 공까지 합치면 50개를 훌쩍 넘는다는 것이다. 3일 연투가 누적되면 위험한 이유다.
핵심 요원인 정우람은 “나 같은 경우는 보통 10~15개 정도를 던지고 나간다. 80%의 힘으로 몸을 푼다”라면서 “올 시즌 불펜투수들은 100% 몸을 풀고 나가지 않는다. 전유수나 문광은도 이제는 경험이 좀 쌓여서인지 80%만 풀고 나가도 마운드에 오르면 100%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불펜투구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이다. 이런 습관이 쌓이면 피로도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여기에 불펜투구수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대목 또한 흥미롭다. 김 코치는 “불펜에서 몸을 풀었다 다시 앉았다 하면 힘이 든다. 두 번까지 반복하는 것은 괜찮은데 세 번을 풀면 무조건 경기에 내보내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만약 나갈 상황이 되지 않으면 그 선수는 그냥 한 경기에 출전한 것으로 치고 휴식일과 다음 경기 투구수 전략을 다시 짠다. 등판 간격이 너무 길어도 문제인데 불펜투구는 하나의 해결책이 된다. 정우람은 “만약 4~5일 정도 나갈 상황이 되지 않으면 불펜에서 20개 정도의 공을 던진 뒤 휴식을 취한다. 실전을 대체하는 셈”이라고 현재 불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시스템 속에 기대효과는 분명하다. 선수들이 투구수 속에 다음 계산을 머리에 그리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그리고 좌우놀이에 집착하지 않는 운영이라 선수들이 언제 나갈지 자신의 임무를 명확하게 그리고 있다. 전유수는 “이틀을 던지면 3일째는 던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이틀째는 좀 더 힘을 내 던진다”라고 말했다. 주로 이기는 경기의 7회에 투입되는 문광은은 “7회 상황에 대비해 몸을 푼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덕아웃과 불펜의 의사소통이 매우 중요한데 김원형 코치가 워낙 그 몫을 잘하고 있다는 게 김 감독의 칭찬이다.
체력적인 면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대다수 투수들의 생각이다. 현재도 다른 팀에 비하면 충분한 관리를 받고 있어 구위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투수들이 많다. 여기에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읽힌다. 마무리 윤길현은 “딱 구체적인 숫자로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라면서도 “다만 모든 선수들이 ‘여름 이후에는 우리가 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불펜 분위기를 설명했다.
김 코치는 “성적에 대해 쫓기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144경기 전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현재까지는 이런 포맷을 잘 이끌어오고 있다. 탄력을 받으면 6~7월쯤 축적된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만약 SK의 시스템이 지금처럼 가진 전력 이상의 성적을 끌어낸다면 KBO 리그에 하나의 참고 이론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도 충분히 좋은 성적이지만 SK 마운드의 ‘여름 이후’의 모습이 더 궁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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